[책 속 명문장] 그림은 말 없는 시 『문학이 미술에 머물던 시대』
[책 속 명문장] 그림은 말 없는 시 『문학이 미술에 머물던 시대』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11.15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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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그럼 우리의 근대 미술은 언제 시작됐을까요? 먼저 개인의 발견을 미술과 연결해볼까요. 중세를 벗어난, 그리고 근대로 언급되기 시작하는 조선 시대를 떠올려보겠습니다. 조선 시대의 개인과 미술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요? 아주 단순하게 접근해 키워드들을 엮어 이렇게 던져보겠습니다. ‘개인의 미술 활동’. 어떤가요. 이제 조금 더 명확해졌나요? 왕실에서 이뤄졌거나 양반들끼리 향유하는 예술을 ‘개인의 미술 활동’이라고 하긴 어렵겠죠. 특정 계층 사이에서 이뤄지는 예술 활동이 아닌 광범위한 계층, 그러니까 계급으로 따지자면 양반이나 왕족이 아닌 사람들의 예술 활동이 이뤄지는 때를 바로 근대의 시작으로 보는 기점설이 있습니다. 바로 영‧정조 시대부터 근대 미술이 시작됐다는 기점설입니다.<14쪽>

이광수라니. 여기에 잠시 쉽표를 찍어보겠습니다. 교과서적 의미부터 확인하자면 이광수는 「무정」이라는 최초의 근대 소설로 여겨지는 작품으로 알려진 문인입니다. 그리고 또 친일 행적으로 유명한 사람이기도 하죠. 얼마 전, 이광수 문학상을 제정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많은 이의 반대로 무산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짧은 에피소드지만,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광수라는 사람은 우리 문학사에서 문학상을 제정하자는 움직임이 있을 정도로 유의미한 문인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무산될 정도로 논란거리를 가진 문인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광수가 최초로 미술비평문을 작성했다니. 이광수와 미술비평문이라는 키워드의 낯선 새로움이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그런데 또 가만히 따져보면 이광수가 미술비평문을 작성했다는 사실이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는 소설만 쓴 문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시와 희곡, 수필, 그리고 논평까지 당시 글로 쓸 수 있는 모든 글을 다 섭렵한 문인이었습니다. 문학사 책을 펼쳐보면 1910년부터 1920년, 그리고 해방 이후까지 각 장르별 챕터에 이광수의 이름이 끝도 없이 나옵니다. 당시 문학계의 3대 천재가 이광수, 최남선, 홍명희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님을 문학사 교재를 통해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이광수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입니다.<32~33쪽>

사조라는 것은 작품을 설명하기 위한 보조 수단일 뿐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의도하고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해석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사조 개념은 서양으로부터 들어왔습니다. 이른바 ‘고전주의’니 ‘낭만주의’니 하는 사조들이 생겨나게 된 지점이 우리 땅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서양에서는 개별의 작품이 조금씩 다른 경향을 갖더라도 역사의 순서와 같이 진행됐습니다. 시대의 변화와 발을 맞추며 발전해온 것입니다.<117쪽>

해방 후 우리의 예술은 극단적 사상 대립이 일어나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전쟁까지 겪게 됩니다. 1950년대가 되면 문학과 미술은 서로의 장르로 독립을 이룹니다. 문인들의 미술비평이 사라진 것도 이 즈음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문인과 화가가 서로의 손을 놓아버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문학과 미술은 친연성으로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습니다. 다만 예전에 비해 늘어난 예술가들의 숫자와 예술이 가진 다양성 자체로 문학과 미술이 서로 보이는 관심이 작아진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139쪽>

『문학이 미술에 머물던 시대』
강정화 지음│yeondoo 펴냄│148쪽│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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