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그림으로 만나는 러시아의 역사 『미술관보다 풍부한 러시아 그림 이야기』
[포토인북] 그림으로 만나는 러시아의 역사 『미술관보다 풍부한 러시아 그림 이야기』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11.14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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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대한민국의 국경을 남한이 아닌 북한으로까지 확대한다면, 러시아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우리와 영토를 맞대고 있는 중요한 이웃나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러시아는 우리와 멀게만 느껴지는 나라이다.

이 책에는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 민중들의 삶과 아름다운 사계절이 담겼다. 특히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과 애정, 사실주의에 기반한 러시아 미술의 정수를 염탐해볼 수 있다. 독자들은 책을 통해 레비탄, 레핀 샤갈, 말레비치 등 걸출한 러시아의 화가들을 만나볼 수 있다. 끓어오르는 혁명의 열정과 시베리아 벌판의 차가움이 공존하는 러시아 그림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삶은 어디에나>, 1888년, 니콜라이 야로센코, 캔버스에 유채, 212X10.6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사진제공=도서출판 자유문고]

그때 우연히 들른 트레챠코프 미술관에서 한 줄기 빛을 만났다. ‘아, 정말 훌륭한 미술관이구나’를 연신 외치며 그림을 관람하던 중 한 작품 앞에서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운명의 그림, 니콜라이 야로센코의 <삶은 어디에나>가 바로 그 작품이다. 야로센코의 <삶은 어디에나>는 시베리아행 열차가 간이역에 잠깐 멈춘 사이, 유형을 떠나는 혁명가들이 기차 창틀 사이로 햇빛을 즐기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미래를 전혀 가늠할 수 없는 죽음의 땅으로 향하는 그들이지만 절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한 모습이다. 수형 열차가 잠깐 간이역에 정차한 사이 아이와 가족은 밝은 햇살을 즐긴다. 엄마는 자신들의 하루 식량으로 쓰기에도 부족한 빵 한 조각을 떼어내 아이에게 나눔의 아름다움을, 생명의 귀함을, 그래서 얻는 사랑의 감정을 가르친다.<5~7쪽>

<봄-홍수>, 1897년, 이삭 레비탄, 캔버스에 유채, 64.2X57.5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사진제공=도서출판 자유문고]

러시아의 봄은 겨우내 차곡차곡 쌓여 있던 눈덩이가 봄 햇살에 녹으며 그 시작을 알린다.

산처럼 쌓여 있던 하얀 눈이 녹아 투명한 강물을 이루며 광활한 대지를 적신다. 그렇게 지난 겨울 쌓인 찌꺼기를 말끔히 걷어낸다. 새로운 계절을 알리는 가장 깨끗한 의식이다.

레비탄의 <봄 홍수>에서도 대지를 적시는 맑은 물과 화사하게 빛나는 봄 햇살에 겨우내 웅크린 나뭇가지는 기지개를 켠다. 생명의 약동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렇다. 생의 절정에서 맞는 인생의 봄 또한 그러하다. 춥고 시린 겨울을 거치고 시련의 흔적인 인고의 기억을 보듬어야 올곧게 나의 절정과 만나게 되고, 진정으로 빛나는 인생의 봄을 얻을 수 있다.<69쪽>

<겨울>, 1890년, 이반 쉬시킨, 캔버스에 유채, 러시아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사진제공=도서출판 자유문고]

‘러시아 겨울’ 하면 살을 에는 듯한 추위, 거센 바람, 세상 모든 것을 얼게 만드는 영하의 날씨만을 생각한다. 하지만 겨울은 겨울다운 아름다움이 있다. 순백의 하얀색이 온 세상을 뒤덮는다. 하얀 빛이 주는 성스러움이 알싸한 겨울 공기와 함께 천지를 수놓는다. 폭풍우치는 겨울바람이 지나가고 하얗게 쌓인 눈 위에 햇살이라도 비칠라치면 은색과 금색의 화려한 반짝임이 마치 오케스트라의 교향곡을 듣는 것처럼 아름답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차가운 러시아의 겨울 숲은 포근하고 순수하다. ‘이런 하얀 눈의 나라에는 나쁜 사람도 사악한 인간도 없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숲 속의 겨울은 순백의 순결 그대로다. 그렇게 새하얀 눈이 세상을 덮으면서 온 세상의 시끄러운 소음마저 그대로 삼켜버렸다. 세상은 태초의 그때처럼 장엄하고 엄숙하다.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인 겨울 숲은 신의 영역이며, 러시아의 눈 덮인 숲 속이 바로 그곳이다.<90쪽>

<청강생>, 1883년, 니콜라이 야로센코, 캔버스에 유채, 키예프 러시아 박물관, 키예프. [사진제공=도서출판 자유문고]

겨드랑이에 책을 꽉 낀 채 비가 내렸던 거리를 종종걸음 치는 소녀의 이미지에서 배움에 들떠 있는 소녀의 설렘을, 변화를, 개혁을, 그리고 청춘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의 느낌을 고스란히 읽어 낼 수 있다. 소녀는 학교에서 함께 읽고, 느끼고, 토론하며 미래를 꿈꿀 것이다. 그렇게 현재를 아파할 것이고, 희망의 미래를 수놓고자 할 것이다. 바로 청춘은 배움의 가장 적합한 시기임을 소녀의 다부진 표정을 통해 또 한번 새긴다.

야로센코의 소녀는 바로 청춘이 주는 또 다른 설렘의 언어다.<222쪽>

『미술관보다 풍부한 러시아 그림 이야기』
김희은 지음│자유문고 펴냄│388쪽│2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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