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가치봄영화제’의 보석… 여장천 감독의 ‘무중력’
‘제20회 가치봄영화제’의 보석… 여장천 감독의 ‘무중력’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11.11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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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20회 가치봄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제20회 가치봄영화제(구 장애인영화제, 이하 PDFF)가 11일 폐막했다. ‘가치봄’은 배리어프리(barrier free, 장애인들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의 일환이었던 ‘한글자막 화면해설 상영’을 브랜드화 한 장애인영화제의 새로운 명칭이다. 올해로 스무 번째를 맞이한 ‘PDFF’는 영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져 우리 사회가 장애인의 존재를 존중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데 힘쓰고 있다.

올해 ‘PDFF’ 경쟁부분에는 총 79편의 작품이 출품됐으며 그중 12편이 프로그래머의 선택을 받아 관객들과 만났다. 영화제 측은 “장편 두 편을 포함해 전체적으로 선정된 영화들의 질적 성장이 돋보인다”며 “뮤지컬,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코미디 등 형식적으로 장르의 외연을 확장한 영화들과, 소수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회의 부조리를 담아낸 작품들이 포진해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여장천 감독의 <무중력>은 시각장애인이 감각하는 세상을 검은 스크린 위의 하얀 점자, 심장 박동 소리, 애니메이션 등을 활용해 실재하는 것과 부재하는 것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이미지로 구현한 영화로 개봉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미 영화는 제13회 대단한단편영화제 등 국내 다섯 군데 영화제 본선경쟁에 진출했다. 수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20회 ‘PDFF’에서 영화 <무중력>으로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여장천 감독

감독은 “첫 연출, 첫 출품, 첫 수상이다. 감회가 새롭다. 같이 만든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고맙다. 후원을 받아 만든 작품인데,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며 “<무중력>을 좋게 봐주신 심사위원님들과 관객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끝으로 가족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어 “영화를 통해 ‘보다’라는 감각과 ‘있다’라는 존재 인식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다”며 “단편적이지만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부재의 존재를 통해서 같이 상상하고, 기억하고, 감각하는 모습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 <무중력> 스틸컷

<무중력>은 할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집에 모인 가족들이 얼마 전 돌아가신 할머니의 존재를 기억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현희(한태경)와 아들 민수(최윤우)는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두 사람의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할머니의 온기를 느낀다.

영화평론가 로버트 휴즈는 “인간은 그들이 만든 영상에서 자신의 역사, 신념, 마음가짐, 욕망과 꿈을 새겨 넣는다”고 말했다. 그렇다. 영화는 지극히 주관적인 예술이다. 무수한 삶의 순간들 가운데 감독은 하필이면 그 시간에, 그 공간을 포착한다. 그 시공간이 하나의 장면으로 조각되고 다른 장면들과 나열되면서 모종의 의미를 생성할 때, 그것은 또 하나의 세상이 된다. 우리의 눈에 보이진 않지만 어딘가에 존재하는 세상. 그것을 애써 포착해 1초에 24프레임으로 영사하는 것. 그것이 영화의 본질이다.

<무중력>은 영화의 본질에 가닿아 있는 영화다. 감독의 역사, 신념, 마음가짐, 욕망과 꿈이 스크린에 오롯이 스며들어있다. 그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에 존재한다. 제목 역시 그렇다. 제목과 달리 영화에는 ‘무중력한’ 존재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제목이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존재’보다는 ‘존재하고 있다는 감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감각에는 중력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오프닝 시퀀스는 단순한 암막이 아니라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존재했다가 영화가 시작하고 나서 사라진 어떤 존재의 시선일 것이다.

인물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있는 거실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이때 시공간을 담아내는 카메라의 시선은 기이하다. 보여주지만 보여주지 않는다. 인물을 포착하나 얼굴을 생략하고, 화자가 아닌 청자를, 앞모습이 아닌 뒷모습을 고집스레 담아낸다. 인물의 시점으로 포획되지 않는 정물을 전지적인 카메라의 시점(혹은 어떤 존재의 시점)으로 바라본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주된 피사체는 행동이 아니라 반응이다. 카메라는 공간을 다시 공간화하며 우리가 미처 감각하지 못하는 ‘무엇’을 감각한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중력은 그것의 힘이 상실될 때 비로소 감각되는 에너지다. 없어져야 비로소 있음을 인지하는 것. 우리 곁에 영원히 머무를 것만 같은 가족이나 친구, 연인의 존재 또한 그렇다. 그래서 사랑으로 결속된 누군가의 부재는 쉽사리 용인되지 않는 삶의 고통이다. 그 고통의 순간들 속에서 부재하는 존재는 실재하는 존재의 감각 어딘가에서 환생한다.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 혹은 존재해야만 한다는 절박함. 그러한 믿음과 절박함이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철학자 클레의 말처럼 예술은 존재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무중력>은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이 영화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보았다면 어떻게 보았는가? 그것을 명료하게 언어화할 수 있는가? 가장 소중한 것은 눈으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당신은 아는가? 이 영화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라는 것을, 눈물로 가려진 흐릿한 세상처럼 처연하지만 온갖 희망의 감각들로 점철돼 있다는 것을 당신은 아는가?

명확한 것은 감독이 이 영화에서 보여준 것만큼이나 보여주지 않은 것, 들려준 것만큼이나 들려주지 않은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것을 기어이 감각하려는 노력. 가능성이 아닌 불가능성을 이미지화하려는 고집. 이처럼 <무중력>에는 시각장애인의 시선을 빌려 비장애인을 비롯한 우리 모두가 놓쳐버린 세상과 존재를 치열하게 감각고자 하는 순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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