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대폼장] 조승연의 뉴욕커 라이프 에세이 『리얼:하다』
[지대폼장] 조승연의 뉴욕커 라이프 에세이 『리얼:하다』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11.11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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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뉴욕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현판에 이름이 적혀 있는 레오나드 스턴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중략) 우리나라 같으면 한 대학에 이름을 남길 정도의 인물이라면 그가 부자라는 것 이외에도 얼마나 도덕적으로 훌륭하고, 나라와 공동체를 위해서 어떻게 헌신했는지 등의 업적이 따라다닐 것이다. (중략)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내가 깨달은 것은, 뉴욕에서의 명성이 그가 이룬 하나의 업적에 집중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레오나드 스턴의 업적은 사업 수완과 부에 집중됐고, 그 외의 개인사는 논외였음을 나중에 알게 된 것이다. 뉴욕에서는 역경을 뚫고 거부가 됐거나 한 분야의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따면, 그가 도덕적으로 치명적인 흠이 있거나 악평이 난무한 것과 상관 없이 존경을 받는다. 이민자의 도시 뉴욕에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거쳐야 하는 지독한 가난과 배고픔을 견디며 도둑질도 할 수 있고 남을 속여서라도 당장 살아남아야 한다는 현실의 절밗어을 서로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40~42쪽>

1972년, 세명의 괴한이 브루클린 남쪽에 위치한 체이스맨해튼 은행 지점에 총을 들고 습격해 돈을 요구했다. 이들의 이름은 존 보이토비츠, 살바토레 나투랄레 그리고 로버트 웨스텐베르그다. 웨스텐베르그는 경찰이 출동하자 홀로 도주했다. (중략) 나투랄레는 FBI의 총에 사살되고, 보이토비츠는 체포돼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중략) 보이토비츠는 22살이 되던 해에 카멘 비풀코라는 여성을 만나 결혼해서 두명의 아이까지 낳았다. 그렇게 평범하게 살았다. 그런데 결혼 4년째가 되던 어느 날, 보이토비츠는 이탈리아계 이민자에게 1년 중 가장 중요한 행사인 산 젠나로 축제에 참석했다가 엘리자베스 이든이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녀와 사귀는 동안 보이토비츠는 점차 자기의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다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자각하게 됐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이 너무나 깊었는지 헤어지지 않으려고 엘리자베스가 성전환 수술을 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수술비가 없어서 보이토비츠는 수술비를 구하려고 친구들과 모의해 은행을 털기로 한 것이다. 이런 사건이 뉴욕 이외의 지역에서 발생했다면 어땠을까? 반인륜적이고 엽기적인 범죄를 다루는 미디어의 가십면에나 올랐을 것이다. (중략) 하지만 뉴욕의 예술인들은 이 스토리를  세계인의 칭송을 받는 걸작 영화로 만들었다. <94~95쪽>

나는 처음 뉴욕에 와서는 기숙사 생활을 했다. 하지만 방학 때마다 비워야 한다고 해서 월셋방을 구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일단 대학 근처에는 월 1,500달러 이하의 집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연락처를 남긴 부동에서 전화가 왔다. 월 900달러짜리 특급 매물이 나왔다는 것이다. 부동산 직원을 따라 나섰다. 낙서와 쓰레기가 난무하는 어두운 골목 구석에 박혀 있는 5층짜리 다가구주택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자, 소형 백열전구 하나가 전선에 매달려 '지직, 지지익'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입구 옆의 집 안에서 한 커플이 스페인어로 말싸움을 하더니 '우당탕' 소리가 났다. 계단과 복도 바닥에는 담배 꽁초와 쓰고 버린 주사기가 널려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마약이었던 것 같다. 매물로 나온 2층 방으로 올라가 보니 유리창은 손잡이까지 페인트로 덧칠돼 아예 열리지 않았고, 마루는 여기저기 못이 튀어나와 있거나, 널판지가 이빨 빠진 것처럼 사라진 곳이 많았다. (중략) 도저히 그 안에서는 살 수 없을 것 같아 집을 몇 군데 더 보러 다녔지만, 당시 뉴욕에서는 월 200만원 이하의 집은 화장실이 다른 층에 있고, 페인트가 벽에서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 있으며, 아래층에 소음과 냄새가 독한 철공소나 핫도그 집이 들어서 있는 경우가 많았다. <103~104쪽> 


『리얼:하다』
조승연 지음 | 와이즈베리 펴냄│194쪽│13,800원

* 지대폼장은 지적 대화를 위한 폼나는 문장이라는 뜻으로 책 내용 중 재미있거나 유익한 문장을 골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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