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삭을 줍듯 쉽게 읽는 서양미술사 『서양미술 이삭줍기』
[리뷰] 이삭을 줍듯 쉽게 읽는 서양미술사 『서양미술 이삭줍기』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11.11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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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바로크 시대, 로코코 시대, 낭만주의, 인상주의, 다다이즘…. 미술관에 가서 아는 척을 좀 해보고 싶지만, 서양 미술사는 어렵기만 하다. 작가의 작품들은 너무나 많고 시대별 특징들은 모호하다.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같은 흔히 읽히는 책들을 펼쳐 봐도 난해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림은 쉬운데 해설은 왜 하나같이 이렇게 어려운 걸까. 필자와 같은 이들을 위한 책이 있다.   

이 책의 제목은 『서양미술 이삭줍기』, 서양미술의 큰 흐름을 짚는 ‘쉬운 미술사책’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경희대 교육대학원 주임 교수이자 미술평론가로,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독일문학’을 연재한 저자 김찬호는 이 책에서 쉽고 직관적으로 서양미술사의 맥을 짚는 방법을 알려준다. 

책은 크게 3부로 나뉜다. 시대순으로 구성된 1부에서 3부까지의 제목은 각각 ‘원형’과 ‘개성’, ‘다양’이다. 선사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살아온 화가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원형을 그리는 데서 나아가 개성을 중시하고, 다양성을 추구한 거대한 흐름이다. 

인류 최초의 미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첫 번째 흐름은 ‘원형’(archetype,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바뀌기 이전의 단순한 모습)이다. 선사시대 동굴벽화에는 동물의 ‘원형’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 벽화를 발견한 미술사 전문가들은 그림들이 워낙 사실적이어서 선사시대 그림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할 정도였다. 이처럼 ‘원형’을 그리며 시작된 인류 초기 미술은 고대 이집트 미술, 고대 그리스·로마 미술, 중세 미술, 르네상스 미술까지, 그러니까 선사시대부터 약 16세기까지 수천 년간 이어졌다.  

르네상스 말기에 등장한 ‘매너리즘 미술’은 ‘개성’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원형’만 그리던 화가들이 매너리즘을 느끼기라도 했는지, 의도적인 왜곡과 강렬한 색체, 밝음과 어두움의 대비를 통해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개성’을 들고나온 이들은 바로크(1600~1700년경)와 로코코 시대(루이 14세가 죽은 1715년부터 루이 16세가 처형된 1793년 사이) 화가들이었다. 이전의 화가들이 왕실과 귀족을 주로 그랬으며 정형화된 형식을 고수한 반면, 이 시기 화가들은 피사체를 일반적인 대중으로 바꾸고 형식적인 면에서도 틀을 깨기 시작했다. 이들의 그림은 귀족의 집이나 황궁이 아닌 살롱이나 화랑에 걸렸다. 

19세기는 ‘개성의 전성기’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다. 바야흐로 ‘이즘’(~주의, ism)의 시대였다.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자연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상징주의가 단지 한 세기 동안 끊임없이 변화하며 출현했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를 중심으로 하는 신고전주의 화가들은 당시 유행하던 로코코풍 양식을 버리고 고대 그리스·로마의 역사와 신화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반면, 이후 생겨난 낭만주의는 질서와 냉정, 조화와 균형, 이상화 등으로 대표됐던 신고전주의의 특징을 거부하며 풍부한 색체와 운동성, 극적효과로 감성을 표현해냈다. 반면,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는 각각 자연과 현실을 이상화하지도, 관념화하지도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담아냈으며, 인상주의는 어떤 대상을 봤을 때 포착된 느낌, 즉 ‘인상’(impression)을 그렸고, 상징주의는 인간의 내면을 상징을 통해 나타냈다.

‘개성’을 넘어 ‘다양성’의 시대를 연 것은 20세기 초 입체주의 화가 피카소였다. 그는 형태를 면으로 단순화했으며, 고정된 원근법을 파괴하고 다양한 시점을 그림에 담아내는 방식으로 미술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큰 파격을 이뤄냈다. 그가 이뤄낸 가장 큰 파격은 미술사가 수천 년간 고수해온, ‘피사체를 1인칭 시점에서 그대로 그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의 혁신이었다. 그리고 피카소 이후 그동안 예술가들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은 연쇄적으로 파괴된다. 예컨대 입체주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미래주의, 추상주의, 다다이즘, 팝아트 등 20세기 현대 미술은 단지 예술의 표현 방식을 바꾼 것이 아니다. 화가들은 피카소처럼 예술이라는 개념 그 자체를 파괴하고 재창조했다. 대표적인 예로 다다이즘의 대표 작가 마르셸 뒤샹은 변기 같은 이미 만들어진 제품(ready-made)을 전시 공간에 놓는 순간 예술이 된다고 봤다. 1960년대 뉴욕을 중심으로 일어난 대중예술인 팝아트는 일상적인 사물과 사건을 소재로 한 이미지를 미술로 수용했다.    

한편, ‘원형’에서 ‘개성’, ‘다양’으로 이동하는 미술사의 큰 흐름에는 한 가지 특징이 더 있다. 바로 ‘구상’과 ‘추상’이 반복된다는 것. 사물의 형태를 최대한 닮게 그리려는 ‘구상’의 세계와 기하학적 문양 등이 등장하는 ‘추상’의 세계는 미술사에서 반복됐다. 예를 들어 ‘원형’을 그리려 한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의 미술은 ‘구상의 시대’였다. 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그려야 했던 중세 미술은 구체적인 사물을 단순화한 추상화와 비슷하다. 이후 르네상스 시대 이후부터는 다시 ‘구상의 시대’이며, 20세기 초 입체주의 이후부터 현대까지는 다시 ‘추상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어렵기만 했던 서양 미술. 이렇게 큰 흐름을 잡고 보면 이해가 쉽다. 미술사를 서술한 책 중에서 이보다 더 쉽고 직관적인 책이 있을까 싶다. 땅에 떨어진 이삭을 줍듯, 가볍게 읽어보자.  

『서양미술 이삭줍기』
김찬호 지음│인문과교양 펴냄│280쪽│22,000원

*해당 기사는 월간 <공군> 11월호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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