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오길영이 본 세상과 영화 그리고 책의 삶 『아름다운 단단함』
[리뷰] 오길영이 본 세상과 영화 그리고 책의 삶 『아름다운 단단함』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11.10 2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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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좋은 글은 솔직한 글이다. 미문이 넘쳐나는 글 혹은 논리적인 글도 그 나름대로의 ‘좋음’이 있지만, 솔직한 글을 따라오기 힘들다. 간혹 아이의 일기가 그 어떤 심오한 철학책보다 철학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솔직함에 있다. 솔직한 글에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소설이나 시보다는 에세이가 솔직한 글에 속한다. 소설은 인물 뒤에, 시는 관념 뒤에 숨을 수 있지만 에세이는 그렇게 하기 힘들다. 글자가 곧 작가 자신의 일상적 사유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처럼 에세이의 어원은 ‘시도하다to attempt’, ‘시험하다’란 뜻을 지닌 라틴어 ‘exigere’이다. 저자는 “한마디로 에세이는 글쓴이가 자유롭게 선정한 주제에 대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견해를 ‘시도essayer’하는 글”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는 세상과 영화 그리고 책에 대한 저자의 치열한 ‘시도’가 담겼다. 각각의 영역에는 저마다의 ‘삶’이 있다. 세상의 삶, 영화의 삶, 책의 삶. 저자는 무엇이 좋은 세상인지, 영환지, 책인지 그들의 단독적인 삶을 천천히 유영하며 맑은 ‘지성적 사유’를 펼친다. 그리고 무엇보다 솔직하다.

특히 눈길이 가는 챕터가 있다. 「아름다움의 맥락」에서 저자는 ‘문학예술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한다. 저자는 “모든 아름다움은 맥락과 배치를 전제한다는 점은 지적해둔다”라고 얘기한다. 즉 책이나 영화에서 악인으로 보이는 인물도 어떤 맥락에 놓이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인물로 읽힐 수 있다는 것.

이러한 저자의 논의는 소위 작가와 그 작품을 분리해 작품의 아름다움만을 강조하는 ‘작품 물신주의’ 비판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언뜻 아름답게 보였던 작품도 더 넓은 (사회역사적) 맥락과 배치관계에 놓이면 추해질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문제는 아름다움의 맥락과 배치관계를 고민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어 “마치 선험적으로, 혹은 객관적으로 아름다움이 작품 안에만 있는 것처럼, 혹은 작가‧시인의 삶을 포함한 더 넓은 (사회역사적) 맥락과 분리된 아름다움이 있는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저자의 말처럼 삶과 분리된 작품의 아름다움은 공허하다. 창작자의 삶이 추하면 그가 구축한 예술의 삶이 아무리 기술적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돼 있어도 “그 아름다움은 피상적”이다. 이처럼 모든 아름다움은 맥락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저자가 말하는 아름다운 단단함 역시 이런 맥락에서 기인하는 게 아닐까.

저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세상과 영화, 책에 대한 호불호를 분명히 밝히면서 나름의 적절한 주석을 달아 독자를 설득한다. 저자의 솔직함에 매료돼 책을 끝까지 읽게 되면, 초두에 언급한 지성적 사유의 맥을 짚어볼 수 있다. 단순한 감각적 글쓰기가 아닌 지성적 사유를 촉발시키는 글쓰기의 힘이 이 책에 담겼다.

『아름다운 단단함』
오길영 지음│소명출판 펴냄│355쪽│15,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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