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기생충’
[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기생충’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11.10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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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봉준호 감독은 영화 <기생충>으로 제72회 칸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습니다. <기생충>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정과 그렇지 못한 가정의 대비와 갈등을 통해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인 빈부 격차를 ‘검은 농담’으로 풀어낸 뛰어난 장르영화입니다.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기생충>에 관해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라고 평했습니다. 실제로 <기생충>에는 상승과 하강의 수직적 이미지가 반복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세 가족의 경제적 불평등과 그들이 사는 공간, 인물을 포착할 때의 카메라 움직임 등은 수직적으로 조각돼 있습니다.

영화 <기생충> 스틸컷 [사진=CJ ENM]
영화 <기생충> 스틸컷 [사진=CJ ENM]

<기생충>은 영화 전반에 걸친 수직의 이미지를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보여줍니다. 감독은 기택(송강호) 가족의 반지하방을 틸트 다운(tilt down, 수직으로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면서 촬영)으로 포착하는데, ‘반지하방’이라는 공간을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며 포착하는 카메라의 시선은 기택 가족의 불운한 운명을 암시합니다.

말하자면 오프닝 시퀀스에서 사용된 틸트 다운은 기택 가족의 주거 공간을 위에서 아래로 서서히 압살하는 듯한 미학적 효과를 창출합니다. ‘반지하’라는 하강의 공간이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카메라의 수직적 움직임에 의해 다시 한 번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영화 <기생충> 스틸컷 [사진=CJ ENM]
영화 <기생충> 스틸컷 [사진=CJ ENM]

이러한 수직적 움직임은 영화의 엔딩 시퀀스에서도 똑같이 반복됩니다. 여기서는 카메라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여러 미장센 또한 수직적으로 표상돼 있는데, 하늘에서 눈이 떨어지고 카메라도 틸트 다운으로 떨어지며 기우(최우식)는 꿈에서 현실로 떨어집니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 역시 해가 떨어진 밤입니다.

카메라의 움직임으로만 <기생충>을 정의하면, ‘떨어지면서 시작해, 떨어지면서 끝나는 영화’입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시작과 마지막 장면이 모두 틸트 다운으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즉 <기생충>에서 사용된 틸트 다운은 영화의 수직적 이미지를 명료화시켜 주제를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낸 촬영 기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시민 케인> 스틸컷
영화 <시민 케인> 스틸컷

반대로 틸트 업(tilt up)은 수직으로 고정된 축을 중심으로 피사체를 아래에서 위로 움직이면서 촬영하는 기법입니다. 오손 웰즈 감독의 <시민 케인>(1941)에서 카메라는 틸트 업으로 케인(오슨 웰즈)의 대저택 세나두 성의 출입문과 상단에 붙은 ‘출입금지’라는 경고문을 비춥니다. 이때 사용된 틸트 업은 공포감이나 긴장감을 높이는 효과를 창출합니다.

틸트 업은 영화에서 영웅이 등장할 때 자주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때 카메라는 아래에서 위로 서서히 올라가며 영웅의 모습을 발끝부터 얼굴까지 훑듯이 포착합니다. 이때 사용된 틸트 업은 피사체에 대한 관객의 집중력을 높이는 효과를 일으킵니다.

한편 틸트 촬영은 남성이 여성을 관음하는 시선으로 사용될 때도 있습니다. 박우성 영화평론가는 책 『영화 언어』에서 “대중 영화에서 틸트 촬영이 가장 빈번하게 활용되는 경우는 남성의 시선으로 여성의 신체를 염탐하는 때”라며 “여성을 구경거리로 대상화하는 시선의 움직임이 틸트 촬영의 일반적 용례라는 것은 그만큼 여성을 차별하는 시선이 대중 영화에 만연돼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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