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죽은 줄 알았던 『할매가 돌아왔다』… 왜?
[리뷰] 죽은 줄 알았던 『할매가 돌아왔다』… 왜?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11.07 1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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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띵동’ 문을 열었더니 광복 직전에 염병에 걸려 돌아가셨다던 친할머니가 서 있다면 어떨까. 난생처음 보는 86세 할머니가 흑인처럼 까무잡잡한 피부에 머리가 금발이라면. “어휴,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포옹하는 백수 손자의 겨드랑이를 새빨간 손톱자국이 남도록 꼬집어버린다면. 일평생 양반의 체통을 지키던 독립운동가 출신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보고 새벽이 떠나가도록 노발대발하며 방 안의 물건들을 깨부수기 시작한다면. 할머니가 과거 일본 순사와 바람나고, 네 남자와 결혼한 전력이 있다는 소문을 듣는다면….  

할머니는 도대체 왜 돌아왔을까? 소설은 ‘잡년’의 귀환으로부터 일어난 긴장감으로 초장에 독자의 멱살을 잡는다. 그야말로 혼돈이다.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더러운, 더러운, 이 더러운 잡년.” 다음날 새벽 1시부터 4시까지 절규와 폭언을 멈추지 않던 할아버지는 새벽 4시에 망치로 방문을 부수기 시작하고, 새벽 5시에는 오열하고, 새벽 6시에는 자신의 방에 있는 물건을 부수기 시작해 할아버지를 진정시키려는 온 가족의 사투가 벌어진다. 엄마의 발은 깨진 거울에 피투성이가 되고 팔뚝은 할아버지가 던진 의자에 맞아 시퍼런 멍이 든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성화로 결국 할머니가 내쫓기려는 찰나, 작가는 할머니의 잠꼬대에서 튀어나온 60억을 소설의 중심에 등장시킨다. 60억. 이 엄청난 돈으로 소설의 초반부 혼돈은 거짓말처럼 정리된다. ‘할머니는 도대체 왜 돌아왔을까?’라는 한숨은 곧 ‘할머니에게 정말 60억이 있을까?’라는 기대감으로 바뀐다. 그리고 소설이 끝으로 흐르며 가족들은 결국 ‘할머니는 정말 왜 돌아왔을까?’라는 어른스러운 질문을 하게 된다. 

결국 이 소설은 실존하는지도 모르는 할머니의 60억이 전부다. 그런데 이 60억은 작가 조남주의 평처럼 “남자들로 말미암은 거대한 균열을 바지런히 메우는 여자들. 그런데도 정숙하지 못하고, 엄마답지 못하다고, 계산적이고 영악하다고 비난받는 여자들. 지겹도록 구태의연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여성 비하와 낙인에서 손녀와 며느리와 자기 자신을 구해내는 유쾌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발굴해낸다. 또한, 이 60억은 박혜진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일본 순사에게 밀고했다는 둥 일본 헌병과 붙어먹었다는 둥 때로는 오해받고 때로는 자의적으로 왜곡된 사실로 인해 벌레보다 못한 취급을 받던 할머니의 훼손된 역사를 일시에 복권”한다. 그리고 이 60억은 사랑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남자에게 희생했지만, 언제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쳐야 했던 아무도 관심 없던 한 여성의 삶을 조명한다. 

『할매가 돌아왔다』
김범 지음│다산책방 펴냄│352쪽│1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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