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서 말고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
자기계발서 말고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11.0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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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요즘 베스트셀러에서 소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자기계발과 힐링이 너무 유행한다. 소설 경시가 더욱 심해졌다. 교육현장에서 인문학이나 문학은 완전히 바닥 수준이다.”

몇 해 전 한 강연회에서 소설가 황석영이 한 말이다. 그는 “386세대에게 요즘 읽은 한국 소설이 뭔지 물었더니, ‘사회과학책 읽을 시간도 없는데 소설 읽을 시간이 어디 있냐’는 답이 돌아왔다”며 탄식을 자아냈다. 실제로 11월 첫 주 베스트셀러 10위권(교보문고) 내 자리한 소설은 『82년생 김지영』한권뿐. 올 한해를 돌아봐도 지난 5월과 6월, 8월에 각각 출간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죽음』, 조정래 작가의 『천년의 질문』, 김진명 작가의 『직지』 등의 소설이 잠시 10위권에 포함된 것 외에는 자기계발과 에세이 도서 일색이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 “시간이 없지 돈이 없냐”는 자조 섞인 한탄이 나올 만큼 ‘시간’의 가치가 중시되는 요즘, 그래서인지 완역본보다는 요약본이 더 선호되고, 문학서보다는 실용서가 선호되는 요즘. 소설이 지니는 가치는 무엇일까? 신형철 교수는 ‘인식의 생산’을 꼽는다. 그는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어떤 시대든 사람들은 소설로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한다. (그렇기에 소설의 중요 가치는 ) ‘인식’을 ‘생산’해내는 데 성공했느냐 아니냐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관심 두지 못했던 주변인의 삶을 간접 경험하게 하면서 ‘인식’의 변화를 이끄는 것이 소설의 주요 역할이란 말이다.

이런 인식 변화는 세상을 향한 포용성 제고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유명한 밀란 쿤데라 작가가 “소설은 윤리적인 판단이 중지된 땅”이라고 말했듯, 소설은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사람을 도덕적 잣대로 단순 평가하기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더듬으면서 인간을 향한 이해의 폭을 넓혀나간다. 성직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불륜녀로 낙인찍힌 여인의 삶을 다룬 『주홍글씨』, 산업화 과정에서 도둑과 윤락녀로 전락한 이들의 삶을 작품 속에 녹여 낸 조정래 작가의 『한강』 등이 대표적인 사례. 옳고 그름을 떠나 그들 삶의 전후 맥락을 소개해 인간에 대한 ‘이해력’을 높인다.

이런 맥락에서 하현 작가는 책 『이것이 나의 다정입니다』에서 “우리는 더 많은 소설을 읽으며 더 많은 타인이 돼야 한다. 당사자가 아니면 절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함부로 말하지 않기 위해. 세상은 무수히 많은 주인공으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위해”라고 말한다. 황석영 작가 역시 “책에는 무수한 사람의 인생이 깃들어 있다. 실제 생활에서는 거짓밖에 보이지 않지만, 문학에는 그의 내면, 뒤안길, 영혼의 깊이가 담겼다. 이를 통해 타자를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하면서 자기 안에 깊은 터가 생긴다. 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은 실직이나 이별 등 인생의 고비가 올 때 너끈히 극복할 힘이 생긴다”고 전한다.

결국 소설은 인생의 유한성을 뛰어넘는 다채로운 삶을 경험케 하고, 그 안에서 ‘공감’을 자아낸다는 말. 실제로 과거 <사이언스>에 게재된 논문 「문학 소설을 읽으면 마음의 이론이 향상된다」(Reading Literary Fiction Improves Theory of Mind)에 따르면 문학 소설을 읽는 사람은 비소설이나 대중소설보다 공감 능력이 높다. 실험군을 나눠 그룹별로 비소설과 대중소설, 문학 소설을 읽게 한 후 ‘공감능력테스트’(표정 사진을 보고 감정 추측)를 진행한 결과 비소설 그룹은 23.47점, 대중소설은 23.22점, 문학 소설은 25.92점이 나온 것. 논문 저자들은 “문학 소설은 음운적, 문법적, 의미적으로 참신한 장치를 써서 독자에게 낯선 경험을 선사한다”며 “예상을 뛰어넘는 형태로 독자의 사고방식에 도전하는 문학 소설의 힘이 작가의 창조력을 독자에게 전달한다”고 설명했다.

문화계 인사들은 소설을 통한 인간 본성의 이해가 포용력을 넓히고 공감력을 키워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는 데 일조한다고 입을 모은다. “인생은 시연 없이 무대에 올라가 딱 한 번 시행하는 연극”(밀란 쿤데라 )이란 말이 있듯, 한 번뿐인 인생을 의미 있고 다채롭게 살아보고 싶은 이에게 문학 소설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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