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면 성공한다? 자기계발서 공화국의 강요된 동기부여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 자기계발서 공화국의 강요된 동기부여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10.30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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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노력하면 꿈을 이룬다”(반기문 전 UN 사무총장 ) “끊임없이 노력하라 노력이야말로 잠재력의 자물쇠를 푸는 열쇠다”(윈스턴 처칠 ) 등 수많은 동기부여 명언이 지금도 많은 사람의 의욕을 북돋고 있다. 이들 명언은 한결같이 개인의 ‘노력’을 강조한다. 다수의 베스트셀러도 마찬가지.

한때 유명 강사로 명성을 떨쳤던 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은 과거 한 강의에서 “숨이 턱턱 막힐 때까지 (죽기 살기로 ) 공부해 봐라. 죽을 것 같이 힘들어도 안 죽는다”며 ‘열공’(열심히 공부하기 )을 강조했다. 그 충고에 많은 학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을 향한 채찍질의 강도를 높였다. 또 당시는 지금보다 성(性 ) 감수성이 낮을 때인지라 일선 학교 선생님들은 “지금 공부하면 미래 아내(남편 )의 얼굴(직업 )이 바뀐다”는 충고도 서슴지 않았다. 학교와 사회 모두가 ‘최선의 노력’을 강조하며 ‘성장’을 강요했다.

이런 추세는 베스트셀러 도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오찬호 사회학자의 책 『우리는 차별에 반대한다』에 따르면 2012년 세 개 온라인 대형서점(교보문고·알라딘·YES24 )에서 20대 청년의 도서 구매 비중은 자기계발서가 약 69%, 인문사회 약 7%, 기타 24% 순으로 자기계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런 추세는 7년이 지난 현재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현재 주요 온라인 서점(교보문고·알라딘·예스24·인터파크 ) 베스트셀러 순위(10위권 )에는 『위포트LH한국토지주택공사』(위포트 ), 『사장하기 참 어렵네요』(이코노믹북스 ), 『공부머리 독서법』(책그루 ), 『50부터는 인생관을 바꿔야 한다』(센시오 ), 『에이트』(차이정원 ) 등 자기계발서(경제·경영 포함 )가 대거 포함됐다.

이 외에 자기계발에 지친 이를 위로하는 내용의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강한별 ), 『혼자가 혼자에게』(달 ), 『너에게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스튜디오오드리 ), 『여행의 이유』(문학동네 ) 등도 대거 순위에 올랐다. 독한 말로 자기계발을 권하거나, 그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는 책 일색인 것이다.

자기계발을 중시하는 건 세계적인 추세지만, 유독 한국에서 두드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확한 답을 찾긴 어렵지만, 적잖은 사람이 암울했던 근대 역사에서 힌트를 얻는다. 근대 사회 들어 신분제가 폐지되긴 했지만, 곧이어 일제 식민통치를 겪으면서 소위 배운/가진 자들에게 당한 설움이 ‘성공 욕구’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실제로 6·25전쟁이 만든 폐허 속에 살길을 찾는 과정에서 ‘기술’을 지녔거나,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평균 이상의 삶을 보장받았고, 산업화 과정에서도 ‘기술’과 ‘학식’을 갖춘 사람은 ‘산업화 역군’으로 대우받았다. ‘사람다운 삶’을 빌미로 온 사회가 ‘더 더 더’를 외치며 ‘노력’을 강요한 것이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넘쳐나는 노동자가 제한된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점에서 자기계발은 필수 요소로 자리했다. 그 덕에 우리 사회는 빠르게 발전했고, 마땅한 자원 하나 없이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성공에 대한 열망’에서 기인한 ‘배우고자 하는 욕구’는 미국 대통령(오바마 )까지 감동하게 했으나, 실제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106개국 중 54위, 자살률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중 최고 수준을 기록하며 불행한 일상을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이 초래한 불안감은 자기계발서를 양산했고, 자기계발서는 다시 불안감을 증폭하면서 자기계발에 몰두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듯한 위기감을 조성했다. 『리딩으로 리드하라』로 유명한 이지성 작가가 비판받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고전을 읽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식의 논리를 전개했던 그는 이번 신간 『에이트』에서도 “10년 내에 세상이 인공지능 중심으로 바뀌고, 단순 노무직과 기능직은 물론이고 전문직도 인공지능에 대체된다.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는 비율이 세계 1위인 나라가 우리나라”라며 또다시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를 대처해야 하는 주장이 잘못된 것은 아니나, 앞서 ‘고전 만능설’에 피로감을 느낀 사람들의 비판이 적지 않다.

유명 북튜버의 책 소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명문대 가는 법’ ‘대기업 입사하기’ ‘연봉 높이기’ 등 욕망을 자극하는 내용의 콘텐츠로 구독자를 늘리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유명 북튜브 ‘김미경TV’, ‘체인지그라운드’ 등만 봐도 소개하는 도서 대부분이 이런 류의 자기계발서다. 적잖은 작가와 출판사, 북튜버가 대중의 불안감을 이용해 돈을 번다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이다.

불안한 현실에 자기계발서를 읽지만, 그 책이 다시 위기감을 조성해 ‘무한 최선’을 외치게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상황. ‘최선’보다 ‘적당히’를 강조하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등의 책이 인기를 얻는 상황이 우리 사회의 피로한 현실을 극명하게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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