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인생을 연주하다 『피아노 앞의 여자들』
[책 속 명문장] 인생을 연주하다 『피아노 앞의 여자들』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10.29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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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그날 밤 나에게 말을 건 거의 전원이 내가 지난 20년간 ‘피아노로 무언가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들 입장에서 나는 책 편집자가 아니라 음악가로 일하고 있어야 했다. 그들을 실망시켜서 미안했고, 내 삶이 기대와 딴판이라 놀라는 것에 당황했다. 그들만 놀랐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드러난 내 삶의 방식은 나 자신도 놀라게 만들었다. 30대 후반에 혼자 된 삶을 즉흥적으로 꾸려나가느라 애쓸 계획은 없었다.<23쪽>

할머니의 음악성과 관련된 증서 및 편지들을 검토하면서, 앨리스의 이야기가 나에게 여전히 미스터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그녀는 지향하던 것의 지리적, 직업적 반대 방향으로 이끌렸을까? 글래스고에서 기세를 더해가던 직업적 삶을 왜 포기했을까? 어떻게 고작 농장생활에 정착하려고 자신의 재능과 경험을 접고 오스트레일리아로 항해할 수 있었을까?<49쪽>

갑자기 잘 알지도 못하는 앨리스에게 끌리는 걸 느꼈다. 음악성이 있는 여성으로서 우리의 경험들 사이에서 다른 유사점들을 찾고 싶은 다급한 열망을 느꼈다. 나는 그녀의 빈약한 전기적 기록들을 사용해서 이 유사점들을 탐구하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의 경험들에 역사와 소설의 페이지들로부터 끌어온 다른 여성들의 경험이, 즉 피아노의 역사 내내 그 앞에 앉았던 귀족들과 노처녀들, 사업가들과 작가들의 경험들이 어떤 식으로 반영되었나를 탐구하고 싶었다.<50쪽>

노동계급 가정 출신의 평범한 소녀가 결혼하거나 제대로 된 가정으로 입양되는 일 없이,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사용해서 스스로 생계를 꾸리는 이야기를 단 한 번이라도 읽고 싶었다. 너무 많은 책들에서 모든 길은 결혼으로 이어졌다. 아기를 낳고 어머니를 피아노로부터 돌려세워 (언제 피아노였다) 기진맥진한 노예로 바꾸는 결합 말이다.<166쪽>

피아노의 발명 및 대량생산은 다른 모든 테크놀로지들이 그렇듯 의도치 않은 결과들로 이어졌다. 결혼 상대가 없는 사람들은 존경받는 상황은 유지하면서 교습으로 수입을 올리기를 기대했다. 키튼과 그녀의 동료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이들이 많음을 깨달았다. 재능 있는 여성들의 과잉 공급은 음악계의 새로운 최하층 계급을 창출했다. 과도하게 교육받은 개인 피아노 교사였다.<216~217쪽>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나는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음악적 재능을 포기하기로 선택했다. 그녀가 스코틀랜드에서 성가대 지휘자와 높이 평가받는 소프라노로서 상승세였던 직업적 삶을 포기하기로 한 결정은, 피아노와 그 어떤 음악적인 삶도 저버리겠다는 내 결정보다 훨씬 심각했다. 하지만 어느 경우에서건 그 선택에는 가능성을 여는 것이 아닌 닫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323쪽>

『피아노 앞의 여자들』
버지니아 로이드 지음│정은지 옮김│앨리스 펴냄│340쪽│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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