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있었던 것이 없음이 우리에게 있음을 알리는 트라이앵글” 『어떤 것』
[리뷰] “있었던 것이 없음이 우리에게 있음을 알리는 트라이앵글” 『어떤 것』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10.28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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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동시는 으레 어린이들이 읽는 글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어른의 가슴을 울리기도 한다. 특히 그 동시가 다루는 무언가가 한때 어른에게 소중한 무언가였지만, 오랜 시간 신경 쓰고 살지 않아 잊어버린 무언가일 때다. 

이 동시집을 낸 시인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을 주머니에 넣고 어디도 아닌 다른 곳으로 가기도 하고 아무도 아닌 누구에게 맡겨두기도 하고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닌 곳에 넣어 두었지 기린 머리만큼 높은 곳도 아니고 채송화꽃만큼 낮은 데도 아니고 옛날도 아니고 지금도 아니고 내일도 아닌 데다 상자 안에 상자를 넣고 상자 안에 또 작은 상자 속에 넣어 깊지도 않고 얕지도 않은 나만 아는 곳에 두었는데 둔 곳을 몰라 나이를 먹으니 다 잊어버렸어 나중에 나중에 꺼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디다 두었는지 통 생각이 안 나 어떤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어. 이젠 가물가물해.” (「어떤 것」)

그래서 시인은 동심으로 돌아가서 자신이 살아오면서 잃어버렸던 소중한 것들을 기록한다. “이제는 없지만 나는 알아요. 나를 지나간 어떤 것들이 세상 모든 것에 깃들어 살고 있다는 것도 알고, 내 속에 웅크려서 가만히 나를 보고 있다는 것도 알아요. 나를 지나쳐 간 어떤 것들을 이 책에 주욱 적어봤어요. (중략) 어떤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도 하고 아주 특별한 것이 되기도 해요.” (‘시인의 말’ 中) 시인은 이 세상 모든 것들에 깃들어 있는 그것들을 더듬어 찾고, 쭈그려 앉아 미소 지으며 가만히 바라본다. 

“개구리는 어른들이나 타는 거야/팔짝팔짝 뛰니까 잘못하면 떨어지잖아/걸핏하면 물속으로 뛰어드니 옷이 몽땅 젖어 버릴걸/거기다 축축하니까 미끄러워서 떨어질 수도 있잖아” (「개구리 타기」)

“내 비행기는 아직 갓난아기라/기저귀도 갈아 줘야 하고/때맞춰 목욕도 시켜줘야 해//내 비행기는 아직 어리지만/업어 주고 안아 주면서/토닥토닥 노래를 불러 주면/하늘을 날아다닐 거야” (「비행기」)

“온 동네 귀뚜라미들과/온 나라 귀뚜라미들이/다 내 노래를 따라 부르고/전 세계에 퍼져 유명 가수가 되었지만//난 이 집이 좋아/이 집 화장실 구석에서/이렇게 혼자 노래나 부르고 있지”(「노래나 불렀지」)

시인 이안이 이 동시집에 대해 “있었던 것이 없음이 우리에게 있음을 알리는 트라이앵글”이라고 썼듯, 이 책은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의 먼지를 털고 “여기 있네”라고 말하며 웃는다. 책에 담백한 그림을 그리는 정인하 작가의 삽화들은 덤이다. 
  
『어떤 것』
송진권 글·정인하 그림│문학동네 펴냄│112쪽│11,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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