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연필을 날카롭게 깎지는 않아야겠다/끝이 너무 뾰쭉해서 글씨가 섬뜩하다/뭉툭한 연필심으로 마음이라 써본다/쓰면 쓸수록 연필심이 둥글어지고/마음도 밖으로 나와 백지 위를 구른다/아이들 신 나게 차는 고처럼 데굴거린다” (「마음」 김영재)
연필심을 뾰족하게 깎아서 쓴 글씨를 섬뜩하게 여긴 시인은 연필심의 끝을 짧고 무디게 해 글씨를 쓴다. 뭉툭한 연필심으로 ‘마음’이라고도 써본다. ‘마음’이라고 썼더니 속마음이 안심하고 바깥으로 나와 흰 종이 위를 대굴대굴 굴러다닌다. 천진한 아이가 찬 둥근 공처럼. 마치 연잎에 뒹굴뒹굴하는 빗방울처럼.
마음의 연필심을 뭉툭하게 깎아 사용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헐겁게, 수수하게, 망설이며, 내주면서, 홀가분하게, 사근사근하게, 펀펀하고 넓게, 눈물도 흘릴 줄 알면서 산다는 것 아니겠는가. 마음을 눈보라처럼 깨진 유리조각처럼 사용하지 않고 볕처럼 봄처럼 사용한다는 것 아니겠는가. 맺힌 꽃망울처럼 뭉툭하게 사용한다는 것 아니겠는가. <14~15쪽>
“코이라는 비단잉어는/어항에서 키우면 8센티미터밖에 안 자란다/냇물에 풀어놓으면/무한정 커진다/너의 꿈나무처럼,” (「코이 법칙」 이혜선)
이 시는 코이라는 관상어에 대해 쓰고 있다. 이 코이라는 관상어는 어떤 곳에서 키우느냐에 따라 생육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한 존재에 대한 물리적 환경과 조건의 영향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가령 우리의 마음을 좁은 어항에 가둘 것인가, 혹은 연못을 집으로 삼을 것인가, 아예 흐르는 물에 흘려보낼 것인가를 묻고 있는 것 같다. 편견과 시비심으로 살지 않는다면 우리 마음의 영토는 무한하게 커질 것이다. 놓아버리면 벗어나고 집착하면 묶인다고 한 까닭도 여기에 있겠다. 이 시는 이혜선 시인이 펴낸 『운문호일』이라는 시집에 실려 있다. 시인이 “그냥 실실/그냥 빙그레/그냥 활짝 웃음이 나오는/날마다가 봄날”이라고 썼듯이 새날의 매일이 길일이다. <154~155쪽>
『시가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다』
문태준 지음│마음의숲 펴냄│228쪽│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