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인북] 삶은 왜 이리 힘들걸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포토인북] 삶은 왜 이리 힘들걸까?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10.23 16: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생각하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어떤 생각을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뜻인데, 이는 "내가 나의 생각을 지배하는 주인이 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러 생각 속 사람들의 공통된 고민은 '우리의 삶은 왜 이렇게 힘든 것인가'하는 난제. 

대한민국 1세대 정치평론가이자 저자인 유창선 박사는 철학, 문학, 역사, 예술 분야의 수많은 텍스트들을 읽어나가며 그 속에서 우리 시대의 어려운 삶을 감당해나갈 지혜와 통찰을 찾아 나선다. 

로트렉 '페르난도 서커스에서:여자 곡마사', 1888. 이 그림은 카프카의 '갤러리에서'와 연결된다. [사진=도서출판 새빛]
로트렉 '페르난도 서커스에서:여자 곡마사', 1888. 이 그림은 카프카의 '갤러리에서'와 연결된다. [사진=도서출판 새빛]

카프카의 '갤러리에서'는 이처럼 아름답게 치장된 허위로 가리워져 있는 세상의 고통을 말하고 있다. 무자비한 단장의 회초리에 강요돼 끊임없이 원을 도는 여곡마사의 존재는 근대 노동세계에 사는 인간의 절망적 상황을 담고 있다. 허위 속에 가리워진 이 '강요된 진지함'은 오늘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곡마단으로 설정된 세상은 우리 삶에서의 허위를 뚫고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함을 말해준다. 행복으로 포장된 여곡마사의 고통을 읽어내고 공연장으로 달려들어가 "멈추라!"고 할 수 있는 나를 보고 싶다. 여곡마사의 강요받은 모습만 보면서, 그것이 전부인줄 알고 박수치고 있는 내가 되고 싶지는 않다. <29~30쪽> 

윌리엄 터너 '노예선', 1871. [사진=도서출판 새빛]
윌리엄 터너 '노예선', 1871. [사진=도서출판 새빛]

영국 화가 윌리엄 터너의 '노예선'은 화물로 취급당하며 바다에 버려진 인간들의 처참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터너의 이 그림은 1871년에 있었던 실화를 소재로 한 것이다. 자메이카를 향해 가던 영국 노예선 종 호는 어려움에 봉착한다. 오랜 항해 과정에서 질병 등으로 60여명의 노예와 여러 선원들이 사망한 상태였고 식수도 여유가 없었다. 이에 선원들은 노예들을 바다에 던져 학살하기로 했다. 보험금 때문이었다. 당시 보험사와의 계약 조건은 노예가 배에서 사망하면 선주의 책임이라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게 돼 있었지만, '화물'이 바다에 빠져 없어질 경우에는 보험금이 지급되도록 돼 있었다. 노예 한명분의 보험금을 환산하면 1인당 30파운드였다. 선원들은 이 보험금을 위해 노예들을 한명씩 바다에 던져버리는 학살을 했던 것이다. <43~44쪽> 

폴 고갱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1871. [사진=도서출판 새빛]
폴 고갱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1871. [사진=도서출판 새빛]

고갱은 이 그림을 오른쪽부터 시작해서 왼쪽으로 가면서 보기를 주문한다. 그림의 가장 오른쪽에는 조용히 잠들어 있는 아기와 젊은 세 여인이 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그림의 중앙에는 두 팔을 올려 과일을 따고 있는 젊은이, 과일을 먹고 있는 여성이 그려져 있다. 개인의 자아인식을 통해 삶에 대한 이해와 노력을 하고 있는, '우리는 무엇인가?'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림의 가장 왼쪽에는 죽음을 기다리는 듯이 고통과 절망에 찌든 모습으로 앉아 있는 노파가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 해당되는 모습이다. 고갱은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이 태어나서 가는 길을 하나의 긴 화폭에 담았다. 우리는 모두가 이렇게 태어나고 늙어간다. <62~63쪽> 

카라바조 '나르시시즘', 1595년경. [사진=도서출판 새빛] 
카라바조 '나르시시즘', 1595년경. [사진=도서출판 새빛] 

요정 에코의 사랑을 거절해 마침내 그녀를 상심 끝에 죽게 한 나르시스에 대한 그리스 신화를 그린 작품인데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는 나르시스로 하여금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을 사랑하게 만듦으로써 그를 처벌한다. 결국 그는 자신을 찬미하면서 호수에 빠져 죽는다. 이 그리스 신화는 이러한 종류의 '자기애'는 저주이며 그 극단적인 형태는 결국 자기파멸이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나르시시즘에 갇혀있는 자가 이처럼 불행한 것은 자기 이외에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이 없고 타자와의 소통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101~102쪽>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유창선 지음 | 새빛 펴냄│256쪽│16,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