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누구나 흔들리며 페미니스트가 된다
[책 속 명문장] 누구나 흔들리며 페미니스트가 된다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10.22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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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그러나 오늘날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겪는 차별은 윗세대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결혼했다고 해서 퇴직하라고 요구하진 않지만, 회사에는 여직원들만의 직업군이나 부서가 여전히 존재한다. 대개 저임금이거나 승진 가능성이 없는 부서들이다. 입사 시부터 본인의 희망이나 노력과 관계없이 그러한 부서에 배치되지만, 결혼 퇴직 각서와 달리 명확한 증거가 남지 않기 때문에 이로 인한 모든 결과가 여성 개인의 책임이 되고 만다. 애초 승진이 제한된 부서로 여성을 배치한 회사의 책임은 거론되지 않고, 승진하지 못한 것이 모두 여성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돌려지는 것이다.<15쪽>

사실 여성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누구이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말했다. 그럼에도 그 말을 듣지 않은 것은 남성 중심 사회였고, 남성 중심 정부였다. 여성들이, 자신들의 입으로 직접 여러 차례 말했는데도, 무엇을 더 들을 게 남아서 남성이 수장으로 있는 행정안전부에서, 여성학과조차 없는 대학에 연구 용역을 발주했을까. 정부는 사실 듣고 싶은 말이 따로 있었던 게 아닐까? 과연 누구를 ‘조져야’ 이 시위가 멈출 것인지 말이다.<76쪽>

따라서 자신이 권력을 가진 입장이라면 가급적 업무 외의 요구는 하지 말아야 한다. 성적인 요구 역시 마찬가지이다. 만약 피치 못하게 그러한 요구를 하게 될 경우, 거절하더라도 인사상 불이익이 없을 것임을 상대방에게 충분히 주지시키고, 상대방이 먼저 동의 의사를 입으로 말하기 전에 함부로 신체 접촉을 하지 말아야 한다. 무타 카즈에 선생의 충고대로, 해당 여성이 자신의 지휘 밖으로 벗어난 이후에 접근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말이다. 앞으론 한국 드라마가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좀 더 존중하길 바란다.<134쪽>

그래서 나는 자라나는 여자 어린이, 여자 청소년에게 선뜻 ‘착하게 자라라.’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자라나는 여자 어린이와 여자 청소년들이, 착해지는 법에 앞서 거절하는 법을 먼저 알게 되길 바란다. ‘내가 거절하면 상대방이 상처받지 않을까?’하는 고민을 한 번이라도 덜 할수록 그 여성의 생존 확률이 더 올라가는 현실에서 도덕을 버리려는 여성을 누가 탓할 수 있을까? ‘올바른 페미니즘’을 논하기 전에, 그런 여성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먼저이다. ‘매너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도 권력이다.<209쪽>

결국 선진국 중심의 ‘여성의 사회 진출’이라는 것도, 저임금으로 다른 여성에게 가사 육아를 맡기고 그 이상의 월급을 벌어들일 수 있는 백인 여성의 입장에서나 가능했던 것이다. 따라서 여성 문제를 더욱 국제적 시각에서 보고 국제적 연대를 구축하는 것이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에게 남은 과제일 것이다.<271쪽>

『누구나 흔들리며 페미니스트가 된다』
이유주 지음│생각비행 펴냄│272쪽│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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