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장조림」
오늘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요
내일의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해요
스위치를 끄면 어둠이 고여 드는 방,
밤은 적당히 짜고 달고 매콤하고
얽힌 손길에 더는 곰팡이가 피지 않도록
지금은 저 방에 나란히 갇혀야 해요
배꼽 속 지루한 인연이 모두 우러나오고
눈에 담긴 통증도 흐물흐물 풀리면
액자 속 다정했던 시절로 우리
찰칵 찰칵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몰라요
방 안 가득했던 어둠이 졸아들면
정수리에 모여든 쓸쓸한 거품을 걷어주면서
이제 어떤 말에도 쉽게 상처 받지 않는
짭조름한 심장을 갖고 살기로 해요
한없이 뒤척이게 되더라도 그건
서로가 서로에게 배어들기 위한 일,
검은 밤이 너무 일찍 끝나버리면 안 되니까
심장의 불꽃을 중불로 내려주세요
<28~29쪽>
「달로 연주하는 밤」
서로를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울림통이 필요한 날이 있다
그럴 땐 텅 빈 달을 빌려와 밤을 연주했다
구멍의 크기는 하루하루 바뀌었으므로
우리의 손에선 매번,
모르는 곡들이 태어났다
새벽마다 음계 끝 옥상으로 가서
느슨해진 감정과 관계를 조율하고 나면
허밍처럼 얇아진, 달무리처럼 희미해진
화음이 다시 돌아올 것도 같았다
달에게 조금 더 빛을 보태주던 당신의 기타 소리
현을 끊으며 유성이 떨어져도
갈아 끼울 추억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가끔은 녹슨 기타 줄에서
더 맑은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34~45쪽>
『오늘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요 내일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해요』
길상호 지음 | 걷는사람 펴냄│352쪽│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