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타짜’
[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타짜’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10.19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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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흔히 영화를 ‘빛의 예술’이라고 부릅니다. 영사기는 빛을 뿜어내며 필름에 담긴 세상을 은막 위에 비춥니다. 빛의 지속시간은 영화의 지속시간이며 빛이 사라지면 영화도 사라집니다. 영화가 황홀한 이유는, 그것이 찬란한 빛과 함께 우리의 눈앞에서 끝내 사라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만큼 아름다운 건 없어”라는 어느 영화 속 주인공의 대사는 영화라는 예술의 본질을 꿰뚫는 말이기도 합니다.

빛은 영화 내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바로 조명(lighting)인데요. 영화평론가 루이스 자네티는 책 『영화의 이해』에서 “영화가 완성되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가장 주된 원인은 새로운 장면마다 대단히 복잡한 조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라며 “(조명을 관장하는) 촬영감독은 촬영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모든 움직임을 고려해야만 한다. 색깔과 형태, 그리고 질감이 달라질 때마다 반사하거나 흡수하는 빛의 양이 달라진다”고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빛의 양과 위치를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 같은 피사체라도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깁니다. 조명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요. 단순화해서 분류하면, 로우 키(low-key) 조명하이 키(high-key) 조명이 있습니다. 로우 키 조명이 어둡고 우울한 상황을 연출한다면 하이 키 조명은 밝고 화려한 상황을 연출합니다. 조명은 영화의 장르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정영권 영화평론가는 책 『영화 장르의 이해』에서 “필름 누아르나 호러 영화 등은 어두운 로우 키 조명을 사용함으로써 으스스하고 서늘한 분위기를 창출한다. 이에 비해 코미디 영화는 밝고 명랑해 보이는 하이 키 조명을 주로 사용한다”고 말합니다. 즉 조명은 영화의 주제와 장르, 분위기와 길항하며 그것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최동훈 감독은 <타짜>(2006)에서 도박으로 인한 인간의 욕망과 허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조명을 아주 감각적으로 사용합니다. 도박으로 인간은 일확천금을 움켜쥘 수도 있지만 반대로 깊은 수렁과 나락으로 빠지기도 합니다. 한순간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셈이죠. 감독은 도박이 벌어질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공간 묘사, 돈을 얻었을 때와 잃었을 때 인물의 심리 변화 등을 상황에 맞는 적절한 조명을 통해 형상화합니다.

영화 <타짜> 스틸컷
영화 <타짜> 스틸컷

가장 대표적인 예가 영화의 시작, 고니(조승우)가 카메라를 향해 앞으로 걸어오는 장면입니다. 이때 고니는 역광으로 인해 실루엣으로만 포착됩니다. 이를 영화에선 ‘리어 라이트(rear light)’라고 합니다. 문자 그대로 피사체를 뒤에서 비추는 조명인데요. 빛과 어둠의 효과를 적절히 살린 그림으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의 그림과 같다고 해서 ‘렘브란트 조명’이라고도 합니다.

비가 온 직후의 축축하고도 어두운 거리, 음울해 보이는 가로등 불빛,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음악 사이로 고니의 어두운 실루엣이 관객의 눈앞으로 다가옵니다. 이어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는 고니. 고니의 빨간 외투와 담뱃불은 상대적으로 어두운 공간과 대비되며 콘트라스트(명암 대비) 효과까지 창출합니다. 이 장면에서 사용된 어두운 자연광과 로우 키 조명은 고니라는 인물의 선악 구분을 모호하게 하고, 영화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는 ‘알 수 없음’ ‘믿을 수 없음’ 등을 이미지로 구현합니다.

정리하면 감독은 우울, 불안, 공포 등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을 때는 로우 키 조명을, 반대로 행복, 즐거움, 만족 등의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할 때는 하이 키 조명을 사용합니다. 오히려 이런 관습을 비틀어 어떤 미학적 효과를 창출하기도 하는데,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큐어>(1997)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통상적으로 영화에서 살인이나 절도 등의 행위는 밤에 이루어지는데, 이 영화에는 대낮에 끔찍한 살인이 벌어지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 역시 대낮에 충격적인 살육이 벌어지죠. 그래서 오히려 더 현실적인 공포감을 자아냅니다.

이 외에도 핵전쟁 이후 지구의 디스토피아적 상황을 묘사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1982), 필름 누아르 영화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빌리 와일더 감독의 <이중 배상>(1944), 리차드 마퀸드 감독의 <스타워즈 - 제다이의 귀환>(1997) 등이 극명한 명암 대비의 로우 키 조명을 인상적으로 사용한 대표적인 영화들입니다.

언급된 영화들의 면면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주로 범죄, 스릴러, 미스터리, SF 등의 영화 장르에서 이 같은 로우 키 조명을 자주 사용합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어떤 범죄 영화가 모두 하이 키 조명으로만 촬영됐다고 생각해보세요. 아마 재미가 반감되겠죠? 이처럼 조명은 영화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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