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청각장애인이고 싶었는데 수어통역사가 됐다"
[책 속 명문장] "청각장애인이고 싶었는데 수어통역사가 됐다"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10.17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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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청각장애인들이 전화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전신타자기는 1960년대 말에야 널리 보급됐다. TTY(Teletypewriter)라고 하는 이 특수 전화기는 청각장애인이 문자를 입력하면 TTY를 사용하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바로 전송이 된다. 비상시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청각장애 연결망 서비스도 생겼는데, 청각장애인이 TTY에 문자를 입력하면 중간 교환원이 들을 수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운영 시간이나 용도에 한계가 있어서 다시 건청인(청각장애인들은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을 이렇게 칭한다) 이웃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부탁하거나, 차라리 직접 발로 뛰는 방법을 택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젠 이런 구식 기계 대신 훨씬 싸고 편리하며 휴대가 간편한 무선통신 장치가 개발돼 청각장애인들의 자율성이 크게 높아졌다. 요즘에는 청각장애 연결망 서비스도 수신자 부담으로 24시간 제공되기 때문에 미국 전역에서 음성-TTY로 동시 대화가 가능하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도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이 나오고,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필요한 정보를 접할 수 있으며, 수어통역을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돼도 눈을 맞추며 함꼐 시간을 보내고픈 이들의 갈증을 해소해주지는 못했다. 세상이 온통 해석할 수 없는 암호 같을 때, 손에 넣을 수 없는 정보가 너무나도 많을 때 다른 청각장애인들과 한자리에 모여 같은 언어로 정보를 나누는 건 생명을 지탱해주는 온기와 다를 바 없었다. <19~20쪽> 

 청각장애 문화를 전파하고 전달하는 건 공식적, 비공식적을 막론하고 청각장애 학교의 몫이다. 시각적인 환경, 모든 교내 활동에서의 의사소통, 또래나 어른 청각장애인들과의 교류, 최소한의 수어 능력을 갖춘 또래와 교사들. 언어 습득 이전의 청각장애 아동에게 필요한 이런 요건을 공립학교에서 제공해준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게다가 문화적 환경이라는 풍부한 자양분을 제공해줄 수 있는 공립학교는 없다. 
 통계를 봐도 청각장애인들은 사회에 지출해서 독자적인 생활과 직업을 유지하는 데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1970년대 중반 이전에는 청각장애 아동의 75퍼센트가 기숙학교에 다녔고, 청각장애인들은 다른 장애 집안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취업률을 기록했다. 실제로 1972년도 자료에 따르면 백인 남성 청각장애인의 취업률이 백인 남성 전체의 경우보다 높았다. '분리교육'이 실시되던 이때가 청각장애인들에게는 오히려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독립된 시절이었다. 
 이제 청각장애 아동의 80퍼센트 이상이 일반 공립학교를 다니지만, 청각장애인의 실업률은 60퍼센트가 넘는다. 물론 수많은 사회 문제가 교육계의 노력을 희석시키는 현 상황에서 이 두 가지만 놓고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기서 청각장애 아동에게 적합한 특수한 교육 방식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청각장애 학교를 폐쇄하고 아이들을 모두 공립학교로 몰아 건청 사회에 얼마나 동화됐는지로 성공의 잣대로 삼는 것은 모두의 손해로 돌아갈 것이다. <72~73쪽> 

『손으로 말하고 슬퍼하고 사랑하고』
리아 헤이거 코헨 지음 | 강수정 옮김 | 한울림스페셜 펴냄│352쪽│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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