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분단국의 젠더를 분석하다 『나는 분단국의 페미니스트입니다』
[책 속 명문장] 분단국의 젠더를 분석하다 『나는 분단국의 페미니스트입니다』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10.15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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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군사적 대결 상태든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협상 단계든, 분단체제가 지속되는 한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답보 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으며, 여성들의 삶은 계속해서 분단국 젠더정치 속에 휘말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간 통일 담론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주변으로 밀려난 것도, 평화에 대한 여성주의적 논의가 널리 확산되지 못한 것도 모두 여기서 기인한다. 그러므로 한반도 내의 여성과 남성 그리고 젠더퀴어Genderqueer까지 모두 자신의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있으려면, 이분법적이고 폭력적인 젠더 이데올로기를 통해 우리를 겹겹이 억압하고 있는 분단구조에서 탈피해야만 한다.<58쪽>

나는 남성으로 태어나서 남성으로 살아왔고 아마 앞으로도 남성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도 남성과 남성의 생애, 남성의 위치 등에 대해 고민하지 않은 채로 성별과 성차에 대해 논한다면 그건 그럴싸한 자기 포장이거나 위선이다. 그럴 바엔 아예 생각을 하지 않는 편이 낫다. 내게는 그렇다.<70쪽>

남성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언제나 변화하며, 그 안에는 모순이 가득하고, 완벽하게 성취할 수도 없는 이상이다. 다만 남성성을 파악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를 돌아볼 수는 있다. 어쩌면 내가 한국에 태어난 남자라는 사실을 차근차근 돌아보고 짚어보는 일이 내가 실천할 수 있는 페미니즘의 하나가 아닐까.<73쪽>

대선이 끝나고 나라는 안정된 것처럼 보였다. 재정비를 끝낸 나라는 앞으로 향했다. 평창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 성과를 이뤄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양측 정상 부부가 함께 있는 장면은 화제가 되었는데, 공식 석상에 부인을 대동하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김정은이 리설주 여사를 등장시킨 것은 정상국가로 거듭나고자 하는 의중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들이 제기되었다. 또한 문제인-김정숙 부부, 김정은-리설주 부부의 모습이 흡사 부모와 아들 내외 같은 안정적인 그림 이 연출되었다고 여겨졌다. 정상국가로 거듭나기 위한 쇼맨십으로 부인과의 대동을 선택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째서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이성애자로서의 면모를 보이며 모든 의혹을 떨쳐버리는 것이 정상국가의 정상으로서의 첫 번째 단계였을까.<207쪽>

“연결될수록 강하다”는 말은 단일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와 적의 구도가 아닌 각각의 위치에 놓여 있는, 그 위치 역시 언제나 변화하고 있는 유동적인 개인들 사이의 갈등과 투쟁과 연대, 단결하여 승리하자고 외치는 진보가 누구의 진보인지,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감추거나 없애는 방식의 단결을 통한 진보라면 그것을 전 사회적 진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질문하는 이들이 확대된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통해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틀렸음을 입증하고 있다. 이들은 분열하여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펼쳐지고 있다.<218쪽>

『나는 분단국의 페미니스트입니다』
수지·추재훈·영민 지음│들녘 펴냄│224쪽│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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