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이 책은 최윤건 할머니의 요리책입니다. 저는 할머니의 손녀입니다. 일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어렸을 적부터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밥을 먹으며 자랐습니다. 몇 해 전 겨울, 할머니가 집 앞 빙판길에서 넘어지셔서 고관절 수술을 하셨습니다. 수술 후 거동이 불편해지고 기력도 쇠하여 더는 부엌에서 요리하기 어려워지셨습니다. 할머니가 부엌에서 요리하시면 맛보려고 기웃거리던 시간은 이제 추억이 됐습니다. 이제는 맛볼 수 없는 할머니의 요리와 그 추억들을 잊지 않기 위해 할머니와 함께 할머니의 요리를 기록해서 책으로 엮었습니다.
할머니의 요리라고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김치다. 지난겨울에 만든 묵은지, 방금 새로 무친 겉절이, 얼음 동동 동치미 김치 등 매 식탁에는 종류별로 김치가 있었고, 김치만 있어도 맛있게 밥을 먹었다.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김장할 때 옆에서 받아먹던 김칫소 양념이다. 산만큼 잔뜩 김장해 놓으면 할머니는 한 해가 든든하다고 하셨고, 나는 매운 김칫소 한 양재기를 앉은 자리에서 다 먹었다.
할머니는 다른 반찬보다도 김치가 제일 개운하고 맛있다고 하셨다. 김장 날에 절인 배추의 작은 잎들을 쏙쏙 뽑아서 무 양념을 넣고 돌돌 싸 주시면 나는 옆에 앉아서 날름 받아먹었다. 그리고 김장이 끝날 때쯤에 맞춰 돼지 수육을 준비하셨다. 김이 모락거리는 뜨거운 고기를 호호 불어 가며 썰어 주시면 방금 만든 김칫소와 함께 배추에 싸 먹는 건 진짜 맛있었다.
나는 음식의 간을 맞추는 것은 잘 못 하지만 칼질은 좋아한다. 김치 담글 때도 간 맞추는 것은 별 도움이 안 되지만 칼질은 좋아한다. 이 정도 크기로 자르면 된다고 할머니가 알려주시면 석둑석둑 무를 잘랐다. 배추김치에 넣을 무채는 길게 길게, 큰 깍두기용은 크게 크게, 작은 깍두기용은 작게 작게. 깍두기가 완성되면 할머니는 “린이가 잘라서 더 맛있네” 하고 얘기해 주셨다.
『할머니의 요리책』
최윤건·박린 지음│위즈덤하우스 펴냄│144쪽│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