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진보’들의 서민 코스프레 속 ‘진짜 불평등’
‘가짜 진보’들의 서민 코스프레 속 ‘진짜 불평등’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10.0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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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포털 사이트에 ‘불평등’을 검색하면 ‘교육 및 소득불평등’이 연관 검색어로 나온다. 해당 검색어를 타고 올라가면 ‘교육 기회의 불평등과 빈곤의 대물림’이라는 구체적인 연관 검색어가 등장한다. 그리고 관련 기사 등 참고 자료를 살펴보면, 교육 및 소득 불평등을 초래하는 원인은 대개 ‘부모의 능력’과 연관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즉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자식의 학교와 직업, 소득이 정해진다는 것.

이를 뒷받침하는 용어가 있다. 바로 ‘위대한 개츠비 곡선’(Great Gatsby curve). 2012년 경제학자 앨런 크루거가 소개해 화제가 된 이 곡선은 소득불평등이 심한 국가일수록 부모의 소득과 자녀가 성인이 된 이후의 소득이 비슷하게 나타난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쉽게 말해 부모가 부자면 자식도 부자가 될 확률이 크다는 걸 보여주는 그래프다. 그야말로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슬픈’ 그래프인 셈이다.

사실 부모의 능력이 자식의 학교와 직업, 소득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분석은 새로울 게 아니다. 아닌 게 아니라 교육 기회의 불평등으로 인한 부의 대물림은 한국사회의 오래된 병폐 중 하나였다. 부모가 대기업 임원진이거나 소위 ‘사’자로 끝나는 전문직 종사자면, 그 자식들이 입시나 취업 시장에서 실패할 확률은 크게 줄어든다. 특히 비교과과정(입학사정관제 등 입학전형요소 다양화)의 확대는 부모의 배경이 자녀의 입시에 보다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진 자의 자식들이 그렇지 못한 자식들에 비해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계층 간의 이동은 더욱 요원해졌다. 이런 불평등을 공고히 하는 요인은 수없이 많다. 앞서 언급한 ‘교육 기회의 불평등과 빈곤의 대물림’이 대표적인 예. 이러한 대물림이 깨지지 않는 이유 역시 다양하다. 그 중 하나는 바로 ‘강남 좌파’ ‘캐비어 좌파’ ‘리무진 리버럴’ 등의 용어로 대변되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에 암묵적으로 공모한 가짜 진보들의 위선에 있다.

이들은 바로 ‘보이지 않는 9.9%의 부자들’이다. 입으로는 99%의 대중들을 위한 온갖 사회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이 침해될 위기에선 가차 없이 ‘보이는 0.1%의 부자들’의 열차에 편승하는 세력들. 최근 한국 사회를 분열과 대결의 장으로 만든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책 『부당 세습 : 불평등에 공모한 나를 고발한다』의 저자인 매튜 스튜어트는 자신이 속한 상위 9.9%의 그룹이 “특권 사회의 공모자”라고 가차 없이 비판한다.

저자에 따르면, 9.9%의 가짜 진보들은 자신들이 정당한 능력으로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능력의 지표인 시험 성적, 학력, 경쟁력 있는 스펙과 커리어, 시스템에 대한 영향력 등은 결국 특권에 기반한 것이다. 더구나 이 보이지 않는 부자들은 그 능력을 대물림하는 정교한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사실상의 신분 혹은 계급을 굳히고 있다. 이들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이유는 역으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료들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9.9%는 정부의 핵심적 기능을 전담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0.1%를 견제하고 비판하는 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행한다. 또한 정부를 가장 열렬히 비판하는 것도 9.9%이다. 정부를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정부를 움직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 책에서 냉소적으로 묘사한 것처럼, 9.9%는 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와중에도 정부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책을 펼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성벽을 높이 쌓아 올리면서 바깥의 불만이 커지면, 그 불만을 자신이 아닌 정부로 향하게 한다. 특권 계급의 문제를 ‘일반 정책’의 문제로 편리하게 바꿔버리는 것이다. 동시에 그들은 “위에 늘 누군가가 있다”는 점을 잊지 않는다.<본문 139쪽 中>

이러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결국 가진 자들, 특히 가졌으면서 가지지 않은 척하는 자들의 뼈를 깎는 ‘각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창인 청년담론 대표는 “9.9%는 0.1%와 달리 일상생활에서 눈으로 볼 수 있고, 친구일 수도, 회사 동료일 수도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이 기득권자인 것을 인식하기 어렵고, 자신이 누리는 모든 것을 그저 ‘노력의 대가’로 착각하기 쉽다”고 말한다.

하지만 9.9%가 주장하는 그 ‘노력의 대가’라는 것이 99%는 누리지 못하는, 0.1%가 이미 구축한 특권과 반칙에 기반한 것일 수도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들이 이른바 ‘서민 코스프레’와 ‘유체이탈 화법’으로 99%의 화살을 엉뚱한 과녁에 조준케 한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이 같은 기만적인 연극이 끝날 때, 비로소 우리 사회의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제대로 된 발판이 마련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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