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하와이 여행 직전에 뇌종양 판정을 받은 한 남자의 유머 『바닥을 칠 때 건네는 농담』
[리뷰] 하와이 여행 직전에 뇌종양 판정을 받은 한 남자의 유머 『바닥을 칠 때 건네는 농담』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10.07 16:3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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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몸이 아픈 사람은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법이다. 아픔이 평소 우리 욕망을 가리고 있는 가식이나 예의, 이성 같은 껍데기들을 날려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을 차가운 말로 쏘아붙이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 책은 40대 벤처 투자전문가이자 책 『하와이 패밀리』의 저자인 손창우 작가가 가족과 함께 네 번째 하와이 여행을 떠나기 직전 갑작스러운 뇌종양 판정을 받은 날부터 시작된다. 작가는 1년 동안 수술과 항암, 재활 과정을 거쳐 완치에 이르기까지 그 고통의 기간 동안의 사색을 써 내려간다. 

고통에 저민 비관적이고 차가운 말로 가득할 법하지만, 손 작가는 이 책에 고통이 날려버린 가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진심’만을 가져온다. 그는 병으로 인해 생긴 차가움이나 비관적인 생각을 특유의 유머와 가족들을 향한 따듯한 마음으로 녹여버린다.

“이제 곧 눈을 감았다 뜨면 내 인생 4막이 시작된다. 4막의 키워드는 너로 정했어. 이것저것 폼 나고 가슴 뛰는 단어들 다 개나 줘버릴게. 4막 키워드는 ‘김지영’ 하나면 될 것 같다. 내가 그동안 미쳐 날뛴 부분이 있다면 너그럽게 용서해 주라. 네가 내 인생 4막의 주인공이니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음식물 쓰레기 하루에 두 번 버리라고 해도 버릴게. 밍밍한 평양냉면 먹으러 가쟤도 두말없이 갈게. 4막에선 그런 남편이 될게.” 

“우리 딸들에게. 이제 곧 시작하는 방사선 치료도 부작용이 제법 있다는데, 일단 정신이 멀쩡할 때 아빠가 당부 몇 가지 할게. 아빠가 이런 꼰대 짓 하는 거 살면서 몇 번 안 될 거니 이해해 줘. 첫째… 둘째… 셋째…”

글은 이렇게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자의 ‘날것의 따듯함’과 ‘진실된 지혜’를 전한다. 그리고 분위기는 놀랍게도 암울하지만은 않다.

“뇌종양, 아직도 이 단어는 섬뜩하다. 세상엔 ‘지구 종말, 칼빵, 구속수감, 개학, 월요일, 폭염, 인신매매, 분신사바’ 등 듣기만 해도 오싹한 단어들이 참 많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게 불친절하고 발음마저 더러운 녀석이 ‘뇌종양’이란 단어인 것 같다. 그래서 더 찾아보지 않았다.”

“난 어릴 때부터 ‘가오’가 중요한 아이였다. 모양 빠지는 것을 싫어하는 아버지의 영향이었으리라. 하지만 철없는 시절에 형성된 나만의 ‘가오’는 대부분 어이없는 카테고리에서 생겨난 후 비판적 사고능력으로 수정 보완되지 못한 채 그대로 내 인생 그라운드룰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 보니 중고등학교 시절의 ‘가오’가 현재의 내 성격을 만든 뼈대가 돼 있다.” 

글을 읽다 보면 작가의 처지에 마음이 아프고 작가가 가진 지혜에 놀라다가도 갑자기 피식거리는 포인트가 많다.   

아마 이 한 문단으로 이 책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글에선 척을 할 수 있다. 괜찮은 척, 강한 척. 게다가 이럴 때일수록 발랄한 기운을 끌어내는 것이 내 특기가 아니던가. 하지만 이번 글은 발랄함이나 씩씩함을 쏘옥 빼고 지금 컨디션과 기분을 가감 없이 전달하고 싶다. 지금 내 얼굴이랑 헤어스타일로는 길 가는 사람 아무나 웃길 수 있는 추레한 상태지만, 글만은 진솔하게.” 

『바닥을 칠 때 건네는 농담』
손창우 지음│이야기나무 펴냄│264쪽│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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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보리 2019-10-08 07:15:29
힘든 시기를 지나는 분들에게 위로가 되는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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