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4월 이야기’
[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4월 이야기’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10.06 0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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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영화를 잘 모르는 분들이더라도 ‘클로즈업(close-up)’이라는 용어는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클로즈업. 문자 그대로 근접 촬영, 가까이 찍기입니다. 다시 말해 피사체를 가까이서 포착해 스크린에 한가득 담아낸 장면 혹은 촬영 기법을 말합니다.

연극과 비교할 때, 클로즈업은 영화에만 있는 독특한 특징입니다. 연극에서 ‘화면의 크기’는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관객이 앉아있는 자리 그 자체가 화면의 크기인 셈이죠. 하지만 영화는 화면의 크기를 마음대로 조정해 관객에게 제시합니다. 강조하고 싶은 걸 확대해 보여주는 것. 그게 바로 클로즈업의 일차적인 목적입니다. 이런 클로즈업에도 다양한 미학적 사유들이 있습니다.

영화학자 벨라 발라즈(Bela Balazs)는 특히나 클로즈업을 예찬한 사람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책 『영화의 이론』에서 클로즈업이 “사물의 ‘얼굴’과 ‘영혼’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즉 클로즈업은 단순히 사물의 외면을 확대해 담은 것이 아니라, 그것의 내면을 직시하고 응시하는, 다시 말해 피사체의 “내면을 폭로”하는 수단으로 여겼습니다.

김호영은 논문 「영화 이미지와 얼굴의 미학」에서 “1910년대에 등장한 ‘클로즈업’은 얼굴 이미지를 가장 잘 나타내는 영화 형식으로 영화 속 얼굴의 미학과 깊게 관련돼 있다”며 “무엇보다, 유럽의 무성영화인들에게 있어 클로즈업된 영화 이미지는 ‘공간적 확대’뿐 아니라 ‘시간적 확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클로즈업은 인물의 얼굴을 스크린에 한가득 담아냄으로써 그 인물이 존재하고 있는 시공간을 순간적으로 지워버립니다. 그리고 그 순간, 인물의 얼굴 자체가 하나의 시공간이자 우주가 됩니다. 인물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순간만큼은 그 인물만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죠. 조금 거창한가요? 영화의 장면을 통해 한 번 더 짚어보도록 하죠.

영화 <4월 이야기> 스틸컷
영화 <4월 이야기> 스틸컷

<4월 이야기>(1998)의 여자 주인공 우즈키(마츠 다카코)는 서점에서 자신의 첫사랑을 만납니다. 감독은 그 순간을 굉장히 서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요. 특히나 첫사랑을 바라보는 우즈키를 클로즈업으로 포착한 장면들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사랑을 해본 사람들은 압니다. 좋아하는 사람 곁에 있으면 그 사람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걸요. 그것은 사람의 눈이 카메라 렌즈처럼 상대를 클로즈업으로 포착해서가 아닙니다. 발라즈가 말한 것처럼 내면의 폭로, 그러니까 나의 내면의 눈이 상대를 클로즈업으로 담아내는 것이죠.

관객들 역시 그 순간의 우즈키를 한가득 담아낸 스크린과 마주하게 됩니다. 우즈키의 외면과 내면에서 피어나는 모든 감정들은 그대로 관객들의 눈에 쏟아집니다. 특히나 해당 장면은 우즈키의 공간적 배경까지 흐리게 처리함으로써 관객에게 오롯한 우즈키의 이미지만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이 세상에 우즈키 밖에 없습니다. 영화적 순간에 다름 아니죠.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스틸컷

이별의 순간에도 클로즈업은 자주 사용됩니다. <브로크백 마운틴>(2005)에서 에니스(히스 레저)가 죽은 잭(제이크 질렌할)의 옷을 바라보며 오열하는 장면을 감독은 클로즈업으로 포착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참회와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에니스의 얼굴을 통해 관객들은 죽음과 이별의 정서를 실감합니다.

이처럼 사랑과 이별의 순간에 클로즈업이 자주 사용되는 이유는, 누군가와의 만남과 헤어짐이 우리 삶에 아주 큰 파장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감독들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그 파장의 순간들을 클로즈업을 통해 되도록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싶은 것이죠.

관객과 영화 속 인물을 최대한 밀착시키는 것. 그 밀착을 통해 영화 속 인물들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도록 하는 것. 종국엔 내 삶의 클로즈업들을 진지하게 사유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클로즈업의 미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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