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책, 이동진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리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책, 이동진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10.05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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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마음이 흔들렸다. 여진이 길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7)에 대한 이동진의 첫 문장이다. 그의 영화 글 또한 그렇다. 마음이 흔들렸고, 여진이 길었다. 특히 ‘패닝 쇼트(카메라의 좌우 수평 이동)’에 관한 미학적 사유와, “잠시 멈춰 선 세상의 화폭 속에 그 자신 정물이 된 채 들어앉기, 혹은 아찔한 시간의 속도 속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기. 성장이란 그 둘 사이의 불안한 진자 운동 속에서 갑자기 배달되는 세월의 선물이다”는 그의 문장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7)의 첫 문단. “주인공 영희(김민희)가 밤의 해변에서 혼자 있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영희 혼자 해변에 있을 때는 낮이고, 어스름 저녁이 몰려오는 해변에 있을 때는 함께 간 사람들이 셋이나 더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제목이 그럴 수 있는 것은 밤의 해변에서 혼자라는 상황이 시공간적 조건이 아니라 존재의 상태이기 때문일 것이다.” 제목만으로 영화의 핵심적 메시지를 풀어냈다.

<밀양>(2007)은 또 어떤가. 이창동 감독의 영화가 소위 ‘문학적’이라는 비아냥거림에 이동진은 가장 영화적인 해석으로 그를 방어했다. 특히 신애가 카센터에서 노래하는 종찬을 바라보는 장면을 왜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찍었는지에 대한 스타일 분석은, 이창동이 신애의 고통을 얼마나 ‘영화적’으로 잘 형상화했는지에 관한 이동진의 탁월하고도 적절한 주석이 아닐 수 없다.

이동진 특유의 문체 역시 그의 영화 글을 빛나게 하는 요인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의 마지막 문단. “우리가 도망쳐 온 모든 것들에 축복이 있기를. 도망쳐야 했던 우리의 부박함도 시간이 용서하길. 종국엔 우리가 두고 떠날 수밖에 없는 삶의 뒷모습도 많이 누추하진 않길.” 영화의 주인공인 조제와 츠네오를 위로하고 기도하는 문장이다. 그의 글 덕분에 조제와 츠네오의 미래를 안심하고 응원할 수 있었다.

마지막 예. <토이 스토리 3>(2010). “떠나는 누군가의 등을 바라보는 것은 무척이나 마음이 아픕니다. 상대에게 등을 내보이고 돌아서는 것 역시 실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하지만 ‘토이 스토리 3’에서 그런 순간이 왔을 때, 앤디가 “미안해”라는 말 대신 “고마워”라는 말을 남겨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영화를 보고 펑펑 울었다가 이 글을 보고 다시 한 번 울었다. 영화가 허구가 아니라 또 다른 현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그의 글을 통해 하게 됐다.

영화평론가의 작업은 문학평론가의 그것보다 고단하다. 이미지를 문자로 산출하는 행위는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동진은 영화를 보고, 읽고, 쓰고, 결국엔 그의 염원대로 만졌다. 간혹 그의 영화 글을 읽고 있노라면, ‘같은 영화를 본 게 맞아?’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리고 이어서 떠오르는 생각.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작가의 제1의 덕목은 영감이 아니라 성실이다.

김중혁 작가의 말처럼 소설가는 인물이나 문장 뒤에 숨을 수 있지만, 에세이스트는 그럴 수 없다. 에둘러가거나 변명하기도 쉽지 않다. 글이 곧 작가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동진은 훌륭한 에세이스트다. 그러니까 ‘씨네 에세이’. 그의 영화 글엔 역사도 있고, 종교도 있고, 철학도 있다. 그의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은 물론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글엔 ‘사람’이 있다. 그는 영화로 삶과 사람을 살아낸다. 그의 글에 많은 사람이 감읍하는 이유다.

개인적인 소망이 있다면, 그가 마이크를 잡는 날보다 펜을 잡는 날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당신의 글로 인해 자주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동진의 영화 글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의 생각이지 않을까? 그의 글은 큰 고마움이다.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이동진 지음│위즈덤하우스 펴냄│944쪽│3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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