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사에 획을 긋는 한중일 서민의 연대 투쟁”
이우봉의 증언록에 1953년 한중일 시민의 연대행진 사진 담겨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최근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에 의해 재일한국인 1세인 이우봉씨의 증언록 내용이 공개되면서 해방 전은 물론, 해방 직후에도 일본의 아키타현 오다테시에서는 한·중·일 노동자가 연대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또 그 연대의 핵심역할을 징용으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이 수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향신문의 보도(10월 1일자 ‘한 장의 사진으로 남은 한중일 노동자의 연대 기록’)에 따르면 이우봉은 직접 당시의 상황을 “조선인과, 중국인, 일본인이 일체가 된 거대한 운동”으로 직접 언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우봉은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 일본이 전쟁특수를 누리는 상황을 설명하며, “하나오카의 조선인들은 자유노조 등을 기반으로 생활 방어 투쟁의 선두에 서서 싸웠다. 그리고 하나오카의 중국인 수난자의 유골수습과 송환운동은 조선인과, 중국인, 일본인이 일체가 된 거대한 운동으로 확대됐다”고 증언했다.(재일교포 1세의 증언)
이우봉의 증언록에 따르면, 일제 패망으로 실업에 허덕이던 조선인과 일본인 260여명은 1947년 하나오카 자유노동조합을 설립한다. 당시 노조위원장은 김일수라는 조선인이었고, 이우봉이 서기장이었다. 당시 김일수는 지인이 빌려준 자택에 중국인 유학생들을 기거시키면서 운동을 이끌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이우봉의 증언록 『재일 1세가 증언한다』의 편집자 이국소(李國昭·일본인과 중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 )씨는 책 후기에 동아시아의 서민이 손을 맞잡은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는 문구를 새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국소는 증언록 후기에 “하나오카 강제연행 중국인 희생자의 유골발굴과 유골송환의 내용을 소개함에 있어서는 새로운 사실을 포함해 이 운동이 전후사에 획을 긋는 한중일 서민의 연대 투쟁”이었다고 밝혔다.
이국소는 후기에 실적이 있는 출판사를 통해 출간하고 싶었는데 출판계 사정 등 여러 이유로 인해 자비출판 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이점에 대해선 김정훈 교수는 “해방 직후 희생된 조선인과 중국인 노동자 피해의 역사와 실상을 밝힌 증언록, 특히 조선인들이 일본 내에서 노동운동의 핵심역할을 한 기록을 선뜻 받아주는 출판사는 없었으리라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우봉의 증언록은 하드커버 양장본이고 책 표지 뒷부분에 정가 1,300엔이라고 새겨져 있다. 책 발행은 ‘재일 1세가 증언한다’ 출판회, 후원은 ‘중국인 강제연행을 생각하는 회’, 인쇄는 ‘아키타활판인쇄 주식회사’로 쓰여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앞서 김 교수는 해방 전 한·중·일 노동자의 연대에 대해 시(일본인 작가가 쓴 「하나오카 사건 회고문」)와 판화(‘하나오카 이야기’)의 장면과 작가의 현장탐방 보고서의 내용이 일치한 부분을 그 증거로 거론한 바 있다.
이어 이우봉의 증언록을 통해 해방 직후에도 아키타현 오다테시에서는 한·중·일 노동자 연대가 크게 이루어진 사실도 새롭게 소개했다.
김 교수는 “일본 내지의 사건이었다고는 하나 해방 전후의 한중일 서민연대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할 일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