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태권도·영어·독서... “밀린 학원비 대신 받아드립니다”
피아노·태권도·영어·독서... “밀린 학원비 대신 받아드립니다”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10.10 1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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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수백만원의 피아노 강습비를 연체했지만, 학원은 꼬박꼬박 나오는 초등학교 6학년 고민재(가명·남). 원장이 전화할 때마다 학부모는 “죄송해요. 내일 보낼게요”라고 답하지만 이튿날 민재는 또 빈손으로 학원 셔틀에 오른다. 집에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아버지는 직장에 다니고, 엄마는 옷가게를 운영하면서 형편은 넉넉한 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말을 안 하니 알 수 없지만 이런 경우는 대체로 의도적인 체납이나 귀찮음이 주원인이다. 결국 원장은 학원비를 대신 받아준다는 대행업체에 도움을 요청했다.

포털 사이트에 ‘학원비 미납’ 등의 단어를 검색하면 학원비 연체로 고민하는 학원장들의 문의 글이 즐비하게 표시된다. 연체 금액은 수만에서 수백만원까지 천차만별. 문의 글에는 비슷한 경험을 지닌 학원 관계자의 댓글이 수십 개씩 이어진다. 학원비로 학부모와 얼굴 붉히는 상황까지 가고 싶진 않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는 상황에 학원장이 취할 방법은 마냥 참거나 내용증명을 발송해 법적 조치를 예고하는 것뿐이다. 그마저도 체납기한이 1년을 넘어가면 법의 도움조차 받을 수 없다. 현행법상 수강료 납부 소멸기한이 1년이기 때문인데, 1년 이내에 법적 절차(내용증명 발송)를 밟아야 청구기한(10년)을 벌 수 있다. 체납금액이 소액(200만원) 미만일 경우에는 별도의 재판 없이 지급 명령 신청서 발부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방법이 편하지만은 않다. 거액을 체납하고 이사 가버리거나, 내용증명을 보내도 수신하지 않는 식으로 시간을 끄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법적 다툼을 하면서 겪는 피로감이 상당해 울며 겨자 먹기로 돈 떼인 셈 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실제로 몇 해 전까지 피아노 학원을 운영했던 A씨는 비슷한 일로 학원까지 그만둬야 했다. A씨는 “피아노 학원비를 잔뜩 밀린 학부모가 있었는데, 차츰 연락을 피하더니, 급기야 몰래 이사까지 가버린 적이 있었다. 그냥 액땜한 셈 치고 넘어가려 했는데, 몇 년 뒤에 오히려 그 학부모가 나를 고소했더라. 다른 피아노 학원에서 아이가 기초교육이 제대로 안 돼 있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나한테 ‘대학도 안 나온 사람이 학원 차려서 돈 받아먹고 수업도 제대로 안 했다’고 따지더라. 콩크루를 내보내서 상까지 받게 했는데, 너무 어이가 없어서 대학 증명서 떼고, 변호사 선임해서 결국 재판에서 이겼다. 밀린 학원비와 재판 비용을 받아내려 했는데, 또 이사를 갔더라. 그때 너무 질린 나머지 결국 학원을 접었다”고 말했다.

상식에 어긋나는 상황에 ‘설마 저런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다수의 학원장은 “진짜 별의 별사람이 다 있다. 오죽하면 학원비 대신 받아주는 업체까지 생겼겠냐”고 토로했다.

학원비를 대신 받아준다고 하면 불법 추심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대다수 업체는 합법적 방법을 사용한다고 말하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집에 쫓아가 위협하는 식의 불법 추심이 아니라 신용조사 내용을 토대로 채무자의 변제능력을 분석하고 채무자에게 변제방안을 제시한다. 원장 전화에는 반응 없던 학부모도 전문 추심 직원이 등장하면 변제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며 “학원비 채무자(학부모)는 초기 1~2개월에 심한 압박감을 받지만, 3개월이 지나면 초조함이 무뎌져 변제를 미루는 마음이 커지기 때문에 때(1년 이내)를 놓치지 않게 내용증명을 보내두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어 “돈 문제로 골머리 앓기 싫은 많은 학원장과 제휴 관계를 맺고 있다”고 덧붙였다.

채권 수납을 대행하면서 업체를 이용하려면 활동비 10~15만원에 돌려받는 금액의 10%를 수수료로 지급해야 한다. 적잖은 금액이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받아야 할 돈을 받겠다는 학원장에게 학부모는 언짢은 기색을 내비칠 때가 많다. 최환석 정신과 전문의는 책 『내 옆에는 왜 양심 없는 사람들이 많을까?』에서 “누구나 약속을 어길 수 있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약속을 잊어버리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잊어버리지 않았지만, 약속을 어기는 것이 반복되면 공감능력 저하를 의심해봐야 한다”며 “공감제로는 더 쉽게 속이고 무책임하게 행동하기 쉽다. 당신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좀 더 관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길 바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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