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는 어떻게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었나
‘벌새’는 어떻게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었나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09.24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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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벌새>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장면이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고, 인물이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는데 <벌새>는 전자와 후자 모두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이 영화는 ‘기억’이 기억에 남는 영화다. 그렇다면 그 기억은 누구의 것인가. 표면적으로 영화는 1994년을 살아낸 여중생 은희(박지후)의 기억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곧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환원되며 관객들에게 기이한 영화적 체험을 안긴다. 한 가지의 물음과 함께. ‘왜 우리는 은희의 이야기에 마음이 흔들리는가?’

<벌새>는 특수하면서도 보편적이다. 그것은 영화가 비원형적이면서도 원형적인 서사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중심 소재인 ‘성수대교 붕괴사고’는 그 자체로 비원형적이지만, 피해자를 제외한 우리 모두가 그 사건의 생존자라는 점에서 원형적이다. 이는 어느 여중생의 지극히 사사로운 체험이 우리 모두의 삶으로 파고드는 이유와 맥이 닿아있다. 은희의 집에서 서서히 멀어지며 다른 누군가의 집들을 줌 아웃(zoom out)으로 잡아내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이러한 영화의 서사 구조를 명료하게 드러낸다.

<벌새>는 은희의 독립된 기억들이 하나의 거대한 기억으로 응축된 우주와 같다. 은희의 우주는 코스모스(cosmos)라기보다는 카오스(chaos)에 가깝다. 이 혼돈과 암흑의 공간에 질서를 부여하는 존재가 있다. 바로 은희 엄마(이승연)와 은희의 한문 선생님 영지(김새벽)다. 엄마는 은희에게 밥과 떡과 감자전을 준다. 무심한 듯 살뜰히 딸을 챙기는 그녀는 은희의 육체를 보전케 하는 생명이다.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은희는 엄마가 사라질까 늘 두려워한다.

영화 <벌새>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엄마가 은희의 생명이라면, 영지는 은희의 캄캄한 마음을 밝게 채우는 빛이다. 영화에는 유독 은희와 영지가 서로를 애잔하게 바라보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은희와 영지가 서로를 바라보는 클로즈업에는 설명이 불가한, 어떤 시(詩)적인 정취가 있다. 영화에서 은희가 딱 한 번 자신의 시점으로 영지를 바라보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바로 은희가 영지를 처음 본 순간이다. 그 이후로 은희는 영지에 대한 자신의 시선을 단 한 번도 관객에게 내어주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학원을 그만둬서 미안해. 방학 끝나면 연락할게. 그때 만나면, 모두 다 이야기해 줄게.” - 영화의 후반 영지의 내레이션

<벌새>는 여러 이야기가 다층적으로 얽혀있지만, 결국 은희와 영지의 서사이다. 은희는 불현듯 학원을 떠난 영지를 찾아 나선다. 영지의 집에 도착한 은희는 그녀가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 영지는 죽고, 은희는 영원히 지켜지지 못할 약속 앞에서 황망해한다. 삶이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도 손가락이 움직여지는 게 신비하다던 영지의 말을 떠올리며, 은희는 죽은 자의 공간에서 손가락을 하나둘 움직인다.

이쯤 됐으니 선언해야겠다. 영지는 은희의 과거이자 미래이며 현재의 은희를 지탱시키는 또 다른 은희에 다름 아니다. 김보라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로 알려진 이 영화에서, 감독의 페르소나는 은희가 아닌 영지다. 영지의 죽음과 은희의 삶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다. 감독은 영지의 죽음을 통해 은희(혹은 과거의 자신)를 구원한다. 은희가 영지를 처음 본 이후로, 은희의 시점 숏(point of view shot)에 영지가 단 한 번도 포착되지 않는 이유는, 그 순간 은희가 영지를 자신과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볼 수가 없다.

주지하다시피 <벌새>는 은희의 기억으로 조각된 이야기이다. 이 메마르고 어두운 이야기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지점은 은희와 영지가 만나는 순간들에 있다. 그러니까 영지는 은희의 기억이라기보다는 꿈에 가까운 '빛'이다. 빛은 언젠가 꺼지기 마련이다. 영지는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은희에게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말하지만, 정작 본인은 어이없는 사고로 죽는다. <벌새>는 삶을 말하고 사라지듯 죽어버린 영지를 버티고 견딘 은희의 기억이다.

하재연의 「빛에 관한 연구」의 시어를 빌려 정리해야겠다. 은희는 영지를 사랑했다. 영지가 빛과 함께 사라져서, 은희는 어쩔 수 없이 그녀와 우주적인 안녕을 해야만 했다. 안녕은 만남과 헤어짐을 동시에 품고 있는 말이다. 그 빛나는 안녕들 속에서 은희는 성장한다. 은희의 1994년은 우리 모두가 잊어버렸지만 마음속 어딘가에 먼지처럼 묻어있는 기억의 한 단면이다.

<벌새>는 누군가가 은희를 떠나고, 은희도 누군가를 떠나는 영화다. 영원히 존재할 것만 같은 것이 기어이 사라지고,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은 것이 끊임없이 내 삶의 목덜미를 부여잡는다. 영화는 산 자의 육체(은희)와 죽은 자의 목소리(영지)로 끝을 맺는다. 엔딩 시퀀스에서 은희는 친구들 속에 있지만 사실상 혼자 있다. 어쩌면 인생은 그 빛나는 안녕들 속에서 불안하게 흔들리는 나를 끊임없이 바라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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