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는 ‘하지 않을 자유’가 있나요?
당신에게는 ‘하지 않을 자유’가 있나요?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09.19 0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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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공녀>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영화 <소공녀>(2017)의 주인공 ‘미소’는 대학을 졸업했지만 뚜렷한 직장이 없다. 이따금씩 누군가의 집을 청소해주며 담배와 위스키 살 돈만 번다. 그 돈마저 모자라 월세방을 처분하고 친구들의 집을 전전한다. 그런 미소를 친구들은 못마땅하게 여기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소설 『백수생활백서』(2006)의 주인공 ‘서연’은 쇼핑몰에 있는 카트를 끌고 서점의 책들을 쓸어 담아 어디론가 떠나버리는 게 꿈이다. 독서를 광적으로 즐기는 그녀는 아버지의 집에 얹혀살며 아르바이트를 통해 책을 구매하기 위한 약간의 돈만 번다. 미소와 서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는 사실이다.

“나 그냥 솔직하게 말할게 미소야. 나는 네가 염치가 없다고 생각해. 네가 제일 좋아하는 게 술이랑 담배라는 것도 솔직히 진짜 한심하고, 그것 때문에 집도 하나 못 구해가지고 우리 집에 와서 지내면서 그런 거 까지 다 이해해주길 바라는 네가 뭔가 좀 잘못됐다는 생각은 안 드니?” - 영화 <소공녀> 中

미소와 서연의 삶에 만족하지 않는 건 그녀들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다. 정확히 말하면 관객과 독자들이다. “담배와 술을 사기 위해 방을 뺀다고?” “아무리 소설이라 해도 너무 현실성 없는 거 아니야?” “저 나이 먹도록 대체 뭘 하는 거지?” 그런데 여기서 의문. 나이가 들면 꼭 뭔가를 해야 할까?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장에 다니고, 정해진 월급을 정해진 날짜에 받는 삶만이 정상적인 걸까?

미소와 서연은 그러한 삶만이 우리에게 안식을 제공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녀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세상이 ‘규범’이라고 정해놓은 삶의 방식으로 살지 않을 뿐이다. 그건 그들이 반골 기질이 있어서도 아니고,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그 규범적 삶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바로 하기 싫은 건 하지 않을 자유다.

대개의 청년들은 취업 전에 인턴이나 대외활동을 하며, 어학 점수를 높이고 직무 관련 자격증을 따기 위해 많은 비용을 들인다. 잘못된 게 아니다.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이 자신의 인생에 큰 의미를 제공한다면, 누구보다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해서 대기업에 입사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아무런 의미도 얻지 못한다면 하지 않아도 된다. 인생은 저런 것들을 하지 않아서 무너질 만큼 그렇게 단선적이지 않다.

실존주의의 대표적 사상가였던 사르트르에 따르면, 인간은 아무 이유 없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다. 그러니 애초에 인간에겐 거대한 역사적 사명이나 살아서 반드시 해야 할 일 같은 건 없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자기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깨닫고 인생의 허무를 극복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스스로의 인생을 납작하게 만들 뿐이다. 이십대 때는 꼭 유럽이나 인도로 배낭여행을 떠나야 할까?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견문을 넓힐 기회는 많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자. 하지 않는 것도 결국 무언가를 하는 행위로 수렴된다. 하지 않을 자유에 더 큰 용기와 책임이 필요하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일하지 않을 권리』의 저자 데이비드 프레인은 책을 쓰면서 자기 삶에서 일이 차지하는 자리를 줄이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는 “자기를 ‘다운시프트 생활인’(downshifts, 고소득이나 빠른 승진보다는 비록 저소득일지라도 여유 있는 직장생활을 즐기면서 삶의 만족을 찾으려는 사람들)이나 ‘게으름뱅이’로 규정하는 이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런 개념을 들어본 일조차 없었고, 내가 이런 표현을 알려주자 몹시 불편해했다”며 “공통적으로, 그들은 단지 일을 덜 하고 삶을 더 많이 살고자 열망했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과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라는 책이 있는가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와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라는 책이 있다. 인생에 정답이나 모범 답안 같은 건 없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려있다. 그리고 한 가지. 누구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거나 판단하지 말자. 상대의 입장에선 당신이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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