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 손흥민, 황희찬이 덮어버린 것들… ‘국뽕’의 원산지는 어디인가?
류현진, 손흥민, 황희찬이 덮어버린 것들… ‘국뽕’의 원산지는 어디인가?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9.18 15: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류현진, 손흥민, 황희찬 [사진= 연합뉴스]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류현진, 손흥민, 황희찬. 지난 15일부터 18일까지 각종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권을 장악했던 스포츠 선수들이다. 전부 외국팀 소속으로, 미국(LA다저스)에서 뛰고 있는 류현진은 7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부진에서 탈출했고, 각각 영국(토트넘 훗스퍼 FC)과 오스트리아(FC 레드불 잘츠부르크)에서 뛰는 손흥민과 황희찬은 골을 넣었다.

반면, 지난 8일 ‘기아 타이거즈’의 양현종 선수가 ‘월간 투수상’에 이어 MVP까지 받았고 지난 17일 ‘강원 FC’의 김지현 선수는 데뷔 2년 만에 두 자리수 득점을 기록해 K리그1 29라운드 최우수 선수로 선정됐지만 알아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관련 뉴스도 그다지 생산되지 않았으며, 당연히 실검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외국인과 경쟁하는 선수들에 대한 우리 국민의 관심은 유난히 뜨겁다. 매 경기마다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올랐다는 사실은 이들에게 국민적인 관심이 집중됐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는 단순한 관심을 넘어선다. 혹자는 조울증(양극성장애) 아닌 조울증이 생겼다고 말하기도 한다. 예컨대 류현진이 잘하는 날에는 종일 기분이 좋고, 경기를 망친 날에는 풀이 죽는다. 류현진만이 아니다. “이겼으니 이제 기분 좋게 하루 시작합시다” “오늘 하루 기분 잡쳤네” 외국에서 뛰는 선수들의 기사에 쏟아지는 댓글들을 살피면 비슷한 증상을 나타내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외국팀 소속 한국 선수들의 성적이 국민의 감정까지 좌지우지하게 된 지는 오래됐다.           

“크~ 취한다! 주모~ 여기 ‘국뽕’ 한 사발 더!” 외국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잘하면 어김없이 달리는 댓글. ‘국뽕’(국가+히로뽕이 합쳐진 말이다. 국수주의 민족주의가 심하며 타민족에 배타적이고 자국만이 최고라고 여기는 행위나 사람을 일컫는다)이라는 단어에 뭔가가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몇 년 전 한 강연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첫째로 국가주의”라고 말했다. K리그는 썰렁해도 국가대항전에는 어마어마한 관중이 몰리고, 국민들은 올림픽 메달과 순위에 집착한다. 영국에서 뛰었던 박지성을 거의 국가대표 응원하듯이 응원한다. 진중권은 “외국인은 누군가 금메달을 따면 ‘쟤는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에게 금메달은 국가의 명예가 달린 것이고, 이러한 사고방식이 모든 선수를 국가대표로 만든다”고 말했다. “현대사회에서 스포츠는 여가나 레크레이션 이상의 의미를 띈다. 특히 국가 대항 스포츠는 국위 선양, 국민 통합은 물론 스포츠 성적을 통한 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효과가 있다.” 문화심리학자 한민 역시 책 『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이러한 스포츠 ‘국가주의’의 폐해는 한둘이 아니다. 외국에서 뛰는 선수들은 어께 위에 본의 아니게 ‘국가’라는 부담감을 얹게 된다. 국내에서 뛰는 선수들은 잘하든 못하든 국민에게 죄스럽지 않으나, 외국에서 뛰는 선수들은 잘하면 ‘국민 영웅’이 되고 못하면 죄송해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예를 들어 지난 2008년 첼시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출장하지 못한 것에 대해 박지성은 “조금 더 노력했더라면 경기에 섰을 텐데 결국 못 서서, 주신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팬들께 죄송하다. 하지만 다시 기회가 있을 것이라 믿고 있고, 다음에는 그라운드에 서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사과했다. 국내에서 뛰는 선수가 단지 경기에 출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팬들에게 이 정도로 사과하는 경우가 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국뽕’이라는 ‘국가주의’와 스포츠가 만나 발생하는 과도한 ‘열광’은 비단 선수의 부담감을 넘어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까지 초래한다. 류현진과 손흥민, 황희찬을 향한 관심이 수많은 관련 뉴스들을 양산하게 했고, 또 얼마나 많은 다른 뉴스들을 묻어버렸는지 모른다. 지난 15일부터 18일까지 ‘손흥민’ ‘손흥민 골’ ‘황희찬’ ‘류현진’은 ‘돼지열병’ ‘태풍’ ‘나경원’ ‘조국’ 등 정치·사회 현안을 뒤로 밀어버렸다.    

한편, 사회학자 오찬호는 책 『나는 태어나자마자 속기 시작했다』에서 올림픽 메달과 올림픽 순위에 대한 집착이 유독 한국인에게서 유별남을 지적하며 한국인이 한국 선수의 승패에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을 “철저히 학습된 것”이라고 표현했다.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이 자신들의 정치적 결함을 향한 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해 ‘3S’(Sex, Screen, Sports) 정책을 내세웠고, 여기에 외국 선수들과 겨루는 선수들을 ‘겨레의 자랑’ ‘대한의 건아’ ‘우수한 민족임을 세계에 증명하다’ 등의 슬로건으로 포장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류현진, 손흥민, 황희찬이 외국에서 선전하는 모습은 보기 좋다. 그리고 그들의 경기가 잘 안 풀릴 때는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국뽕’에 취할 필요까지 있을까. ‘국뽕’에 취하는 사이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들은 무엇인가. 아니, 애초에 ‘국뽕’의 원산지는 어디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비회원 글쓰기 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