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특선 영화는 없다, 명작만 있을 뿐
추석 특선 영화는 없다, 명작만 있을 뿐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09.13 0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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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명절 연휴를 즐길 때 빠질 수 없는 것. 바로 영화다. 가족이나 친척과 함께 영화관을 찾을 수도 있고, 한가로이 TV 앞에서 추석 특선 영화를 기다릴 수도 있다. 물론 누워서 휴대폰으로 넷플릭스를 즐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공통점은 모두 영화를 보려한다는 것!

명절이 돌아올 때마다 “이번 연휴에는 어떤 영화를 볼까?”라는 제목으로 수많은 기사가 쏟아진다. 독서신문 기자들 역시 독자들에게 추석에 보면 좋을 만한 영화를 추천하기 위해 고심했다. 논의 결과, 평소에 봐도 좋은 영화가 곧 추석에 봐도 좋은 영화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클래스는 영원하니까.

뛰어난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세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 올 추석 연휴엔 여유를 갖고 활자와 이미지 속으로 빠져보자.

■ <밀양>(2007)

영화 <밀양>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이창동 감독의 <밀양>은 이청준의 단편 소설 『벌레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영화는 소설의 모티프인 ‘이윤상 유괴 살해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다. 이 사건은 1980년 11월, 당시 중학생이던 이윤상 군이 학교 스승인 주영형에게 유괴돼 살해된 사건이다.

범인이 형 집행 전 마지막 남긴 말이 “나는 하나님의 품에 안겨 평화로운 마음으로 떠나가며, 그 자비가 희생자와 가족에게도 베풀어지기를 빌겠다”였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겠지만, 내게는 그 말이 그렇게 들렸고, 그것은 내게 그 참혹한 사건보다 더 충격이었다.” - 이청준, <밀양 : 벌레이야기>, 열림원, 2007, 작가서문 中

『벌레 이야기』에서 이청준은 신적인 존재 앞에 무력한 인간을 ‘벌레’에 비유해 인간의 불완전성과 한계를 표현했다. 이창동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관객들에게 ‘고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참척(慘慽, 자손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먼저 죽는 일)의 고통은 어떤 종교로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 <밀양>은 종교적 구원이 우선이 아니라 나약한 인간으로서 아파할 권리가 우선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허문영 평론가의 말처럼 <밀양>은 유괴를 언급할 뿐 다루지는 않는다. 이 말은 유괴가 영화의 소재일 뿐 주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영화는 유괴된 아이의 시신은커녕 어미가 아들의 시신을 확인하는 장면조차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 <밀양>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대신에 이창동은 인간의 고통 그 자체에 천착한다. 삶의 전부라 여겼던 아들을 잃은 어미의 뒷모습을 핸드헬드(handheld, 카메라를 삼각대에 장착하지 않고 손에 들고 촬영하는 기법)로 담아내는 장면은 이러한 주제를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 <라이프 오브 파이>(2012)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는 2002년 맨부커상 수상작인 얀 마텔의 소설 『파이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인도 폰디체리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는 파이 가족은 캐나다에서의 새로운 삶을 위해 동물들과 함께 대형 화물선에 오른다. 하지만 난파 사고로 인해 파이는 조난당하고, 작은 구명보트 위에서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함께 태평양을 표류하는 신세가 된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얀 마텔이 활자로 구축한 망망대해의 세계를 이안은 보란 듯이 이미지로 형상화했다. 영화에서 사용된 부감(내려 찍기)과 롱 쇼트(멀리 찍기)는 가히 압도적인데, 특히 고래가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장면을 직부감으로 담아낸 장면과 이어 고래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롱 쇼트로 포착한 장면은 그야말로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주목할 만한 시각적 이미지와 함께 이야기 역시 충격적인 영화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엄청난 반전이 숨어 있는데, 영화는 삶과 죽음, 표면과 이면 등 진실과 거짓에 대한 여러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며 끝을 맺는다. 영화의 마지막, 파이가 풀어놓는 이야기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오롯이 관객의 몫에 달려있다.

■ <가장 따뜻한 색, 블루>(2013)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압델라티프 케시시가 감독의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2013년 칸 영화제에서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영화는 2010년 출판된 쥘리 마로의 만화 『파란색은 따뜻하다』가 원작이다. 책은 두 여인의 사랑과 이별을 명확한 색채 대비를 통해 교차시키는데, 이러한 작법은 성적 소수자의 삶을 은유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평범해 보이는 사춘기 소녀 아델(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은 우연히 길거리에서 엠마(레아 세이두)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섹슈얼리티가 남성이 아닌 여성에게로 향하고 있음을 직감한다. 레즈비언 여성의 연애를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묘사하고 있는 이 영화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적절한 콘트라스트(contrast, 영화에서 어떤 요소의 특질을 강조하기 위해 그와 상반되는 형태, 색채, 톤을 나란히 배치하는 일)를 활용해 극의 테마와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영화의 처음과 끝을 아델의 걸어가는 뒷모습으로 여닫는 감독의 연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걷는다는 행위를 플러스(+), 뒷모습을 마이너스(-)로 환원할 수 있다면, 뒷모습을 보이며 걸어가는 아델의 행위는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합쳐져 제로로 수렴된다. 엠마를 만나기 전, 기본값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모습을 카메라는 땅에 뿌리를 박고 롱 쇼트로 담아낸다. 이를 통해 감독은 아델을 무작정 연민하지 않는 영화의 태도와 이제 엠마가 없어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아델의 의지를 형상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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