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절벽에서/거꾸로 떨어져 봤니?//바닥을 치며/울어 봤니?//울면서/부서져 봤니?//부서지며/나비처럼 날아올라//무지개를/만들어 봤니? - 김금래 「폭포」 -
내 어릴 때 소나무 서 있는 들판에서/아버지 같은 눈사람 하나 외롭게 서 있으면/눈사람 옆에 살그머니 쪼그리고 앉아/한 무더기 똥을 누고 돌아와 곤히 잠들곤 했는데/그날 밤에는 꿈속에서도 유난히 함박눈이 많이 내려/내가 눈 똥이 다 함박눈이 되어 눈부셨는데/이제는 아무 데도 똥 눌 들판이 없어/아버지처럼 외롭고 다정한 눈사람 하나 없어/내 마음의 똥 한 무더기 누지 못하고/외롭고 쓸쓸하다 - 정호승 「마음의 똥」 -
주머니란 주머니에서는 모두/하얀 종잇장들이 쏟아져 나왔다//아버지는 의식이 돌아왔지만/나는 수심 깊은 침묵에서 돌아오지 못했다//담배를 찾아내려던 담임 선생님은/주머니만 뒤집어 놓고 혀를 끌끌 차며 돌아섰다//그해 여름의 바다는 참으로 푸르렀지만/그해 여름의 바닷가는 죽은 조개껍질들로 가득했다//하얀 거품을 물고 망망대해를 떠도는 파도를 볼 때마다/그 많은 조개들의 혀와, 그 무서운 침묵의 종잇장들이 떠올랐다//나는 오래지 않아 시를 쓰기 시작했다 - 이홍섭 「사춘기」 -
너를 좋아해서/너를 피해 다닌다//내가 겨우 바라보는 건/너의 옆모습//마음은 곁눈질에서 시작되나 봐//반달의 가려진 반쪽을 바라보듯/너의 나머지 표정을 상상해//쳐다봐 줬으면 하다가도/눈 마주치면 화들짝/고개를 돌리지//공책 귀퉁이에 그렸다가 얼른 지우는/너의 옆모습 - 이혜미 「옆모습」 -
『나를 키우는 시. 2: 날개가 돋는 찰나』
손택수·김태현·한명숙 지음 | 창비교육 펴냄│120쪽│1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