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거짓을 말하는 자는 단지 거짓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거짓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며, 이런 경향으로 기울어 거짓말하기를 선택해서 의도적으로 거짓을 말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힙니다. 여기서 플라톤에 대한 또 다른 반론, 즉 의도적으로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 비자발적으로 거짓말하는-만일 그럴 수 있다면-사람보다 더 나쁘다는 반론이 등장합니다.<11쪽>
거짓이라도 자신이 말하는 것을 스스로 믿는다면, 그리고 남을 속이려는 의도 없이 그에게 이런 착오를 전한다면, 거짓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자기가 생각하고 주장하는 것의 진실을 진심으로 믿는다면, 단순히 틀린 것을 말하는 것일 뿐, 거짓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우리가 다뤄야 할 믿음과 진심의 문제입니다.<15쪽>
누군가가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더라도 엄밀한 의미에서 누군가가 거짓말했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것은 구조적인 이유로 언제나 불가능합니다. ‘내가 말한 것은 참이 아니다. 분명히 내가 틀렸지만, 나는 속이려고 하지 않았다. 선의였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상대로 우리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습니다.<24쪽>
거짓말은 ‘의도적인 행위’ ‘거짓말하기’입니다. (‘정해진’) 거짓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하기’라고 부르는 발언, 그 말하기를 원하는 바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거짓말인가’라고 묻기보다는 ‘거짓말한다’는 것은 ‘무엇을 한다는 것인지, 무엇보다도 거짓말할 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합니다.<25쪽>
거짓말이나 진실성의 의무에 대한 칸트식 정의는 매우 형식적이고, 명령적이고, 무조건적이어서 모든 ‘역사적’ 고려를 배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진실만을 말해야 하고, 어떤 순간에 어떤 가정에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역사적 상황이 어떻든 간에 참돼야만 합니다. 유용한 거짓말 혹은 배려를 위한 거짓말이나 친절한 거짓말 따위는 절대 용인되지 않습니다.<49쪽>
칸트는 인간의 법적 권리와 일반적 사회성의 근거 자체, 즉 기대되는 효과가 어떻든지, 외부 맥락과 역사 맥락이 어떻든지, 무엇보다도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내재적 필연성에 관심을 둡니다. 조건 없이 거짓말을 몰아내지 않으면 인류의 사회적 관계를 그 원칙부터 무너뜨리고, 사회의 존립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칸트를 아주 작은 거짓말이라도 정당화된다면, 즉 윤리 실천 원칙이 스스로 법을 파괴하지 않고는 보편화될 수 없을 어떤 행동이 정당화된다면 사회는 존립이 불가능해진다고 보았습니다.<51쪽>
『거짓말의 역사』
자크 데리다 지음 | 배지선 옮김│이숲 펴냄│128쪽│1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