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선택받은 자만이 읽을 수 있다 『최초의 책』
[책 속 명문장] 선택받은 자만이 읽을 수 있다 『최초의 책』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09.14 14: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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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응 그게 바로 최초의 책이 위험하다는 이유야. 숨바꼭질 끝에 책을 찾더라도 최초의 책은 자신이 선택한 사람만이 읽을 수 있대. 독자가 책을 고르는 게 아니라 책이 독자를 고르는 거지. 그렇게 고른 독자에게 책은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마음에 들면 계속 읽게 하고, 마음에 안 들면 중간에 그의 영혼을 확 삼켜 버리는…….”<39쪽>

최초의 책은 계속 자신을 읽으라며 강요하고 있었다. 책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다시 선생님께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러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챕터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것뿐이었다. 책을 다 읽지 못해 과거에 갇히는 불상사만은 없어야 하니까.<123쪽>

하늘은 허연 우유와 같아 금방이라도 뭔가 쏟아질 것 같았다. 짐이 마차 창문을 통해 풍경을 보던 중, 그만 달리던 마차가 급정거하고 말았다. 신문을 읽으며 길을 건너던 남자 때문이었다. 다행이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윌리엄 녹스는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투덜거렸다.

“세상이 쓸데없는 활자로 넘쳐나고 있어요. 저기 좀 보세요. 길거리에 교양인들만 있는지 다들 뭔가 읽느라 느릿느릿 길을 건너잖아요. 저러더 마차에 치이면 어쩌려고……. 말셉니다. 말세.”

윌리엄 녹스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세상은 활자로 넘쳐나고 있었다. 이제는 글을 알거나 책을 가지면 출세하는 시대도, 도서관이 부와 권력의 상징인 시대도 지났다.<164쪽>

“윤수야, 물어볼 게 있어.”
“뭔데요?”
“사서가 되고 싶다는 마음 계속 변치 않을 수 있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려운 정사서 시험에 떨어져도, 그 시험에 합격했는데 막상 갈 데가 없을 때도, 정민이처럼 계약직에서 갑자기 잘려도, 사서를 전국에서 열 명만 뽑아도……. 그리고 도서관이 갑자기 무너지고, 선생님이 없어져도…… 그 마음 변치 않을 수 있냐고.”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174쪽>

“그래. 넌 꼭 좋은 사서가 될 거야.”

내 말에 영혜가 기쁘게 웃었다. 지금까지 보았던 영혜의 미소 가운데 가장 따뜻해 보였다. 영혜는 최초의 책을 찾아다녔는데, 정작 발견한 것은 그녀 자신이자 그녀의 꿈이었다. 영혜는 이미 훌륭한 사서였다. 그녀만큼 훌륭한 사서를 본 적이 없었다.<221쪽>

『최초의 책』
이민항 지음 | 자음과모음 펴냄│240쪽│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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