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봄날은 간다'
[명작으로 알아보는 영화 언어] '봄날은 간다'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09.08 1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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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거나 강력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를 선정하여 그 영화의 명장면을 분석합니다.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의 장면 분석을 통해 간단한 영화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면,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조금 더 분석적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여러분, 다들 그 대사 아시죠?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2001)에서 상우(유지태)가 은수(이영애)에게 했던 말.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이렇게 대사로만 보니 조금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생에서 사실상 처음 이별을 경험한 상우로선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상우와 달리 몇 차례 이별을 경험하고, 연애에 있어 나름 베테랑인 은수에겐 이 말이 조금은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누군가는 “으이구 상우야, 사랑은 원래 변하는 거야”라고 혀를 찰 수도 있지만, 다들 첫사랑과의 이별은 정말 아팠잖아요? 이별은 서로의 눈동자만 마주쳐도 황홀했던 순간들, 우리가 영원을 걸고 맹세했던 약속들이 전부 무의미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니까요. 이렇듯 상우에겐 은수와의 이별이 삶에 있어서 큰 변곡점이 되는 순간이었을 거예요. 이 순간을 허진호 감독은 어떻게 포착했을까요?

장면1 / 영화 <봄날은 간다> 스틸컷
장면2 / 영화 <봄날은 간다> 스틸컷

이 장면에서 우리는 영화의 ‘180도 법칙’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80도 법칙이란, 한 장면에서 인물 사이의 공간적 관계를 설정하는 아주 기본적인 법칙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영화학자 수잔 헤이워드는 180도 법칙에 관해 “상상 선imaginary line으로도 알려진 것으로 관객의 시점의 일관성을 확보해 주는 규칙이다. 기본적으로 한 씬을 촬영할 때 카메라는 이 상상 선의 한쪽에 머물러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관객은 방향 감각을 잃게 된다”라고 말합니다. 조금 어려우신가요? 그럼 그 유명한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장면을 통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상우와 은수 사이를 연결하는 상상 선을 설정합니다. 빨간 직선 보이시죠? 즉 장면1과 관련된 모든 상황은 이 상상의 빨간 직선 안쪽에서 촬영돼야 합니다. 그러니까 노란색으로 표시된 공간 안에서만 카메라를 움직여야 합니다. 왜냐고요? 카메라가 노란색 공간을 벗어나 인물을 포착할 경우, 관객은 공간에 대한 심한 왜곡을 느끼게 됩니다. 다시 말해 180도 법칙을 지키지 않으면 관객은 편집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허진호 감독은 장면1에서 장면2로 넘어가면서 이 180도 법칙을 깨뜨립니다. 관객의 시선에선 왼쪽에 있던 상우가 갑자기 오른쪽에 있게 되는 것이죠. 이때 관객은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 공간감에 대해 혼란에 빠질 수 있습니다. 허진호 감독은 왜 이렇게 촬영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허진호 감독은 상우와 은수의 헤어짐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180도 법칙을 고의적으로 어긴 것입니다. 통상적으로 180도 법칙을 어기는 촬영은 감독이 두 인물의 단절된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쓰는 기법입니다. 즉 연인의 헤어짐을 편집을 통한 영화 언어로 표출하는 것이죠.

이렇게 180도 법칙을 고의적으로 깨뜨리는 건, 두 인물의 단절된 관계를 표현할 때 쓰기도 하지만, 영화 내러티브 상 극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에서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가 조제(이케와키 치즈루)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충격에 빠지는 장면에서도 180도 법칙이 깨지는데요. 해당 장면을 볼게요.

장면3 /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스틸컷
장면4 /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스틸컷

장면3에서 왼쪽에 있던 츠네오가 장면4로 넘어가면서 오른쪽에 위치하게 됩니다. 잠시 헤어졌던 연인인 츠네오와 조제는 이 순간을 계기로 다시 재회합니다. 이처럼 180도 법칙을 고의적으로 깨뜨리는 촬영 기법은 일상적으로 흐르는 이야기에 충격을 가해 극의 흐름에 변화를 주기 위해 사용됩니다.

이렇게 영화 감독들은 배우의 입을 빌려 직접적인 대사를 통해 해당 상황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카메라의 움직임, 편집, 앵글의 위치 등을 조작해 그 상황을 표출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이제 멜로드라마를 보면서 연인이 헤어지는 장면이나 혹은 극의 흐름이 뒤바뀔 때, 다른 감독들은 어떤 영화 언어로 그 순간을 포착하는지 더욱 유심히 보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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