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新문방사우] 키보드계의 미친 존재감… 名品 ‘TX키보드’를 아시나요?
[기획-新문방사우] 키보드계의 미친 존재감… 名品 ‘TX키보드’를 아시나요?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9.08 08: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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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책 읽는 사람 곁에는 늘 붓과 먹, 종이와 벼루가 있었다. 읽는 행위와 쓰는 행위는 별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읽는 자는 썼고. 쓰는 자는 또 읽었다. 오늘날 우리도 다르지 않다. 무언가를 게걸스럽게 읽어대고 또 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곁에는 무엇이 있는가. 읽는 행위를 창조 행위와 연결하는 新문방사우를 소개한다.   
미국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에 올라온 'TX키보드' 매장 관련 게시글과 댓글 [사진= 레딧]

[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지난 5월 미국의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에 한국에 ‘TX키보드’ 매장이 생겼다는 글이 올라오자 3,300여개의 ‘좋아요’가 눌리고 100여개의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 이 매장에 가기 위해 일부러 한국에 오고 싶다는 댓글이다. 국내 최초이자, 아마 세계 최초의 ‘키보드 커스터마이징’ 매장이라는 평도 있다. 외국에서도 와보고 싶은 매장. 가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산디지털단지역 부근에 위치한 매장의 문을 열었다. 한쪽에는 커스텀 키보드가 빼곡히 진열돼있고, 작업실에서는 어떤 이들이 인두기로 키보드 기판을 지지고 있다. 창고에는 기성품 매장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한 키보드 부품들이 쌓여있다. 진열된 키보드는 타건(타이핑)해볼 수 있었다. 하나를 골라잡았다.      

‘또각, 또각, 또각, 또각’은 아니다. ‘다각, 다각, 다각’도 아니다. 이 소리와 이 느낌을 묘사하기가 참 어렵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반드시 타건을 권해보고 싶다. 굳이 표현하자면 단단한 대리석 바닥에 고무 구두굽이 닿는달까. 그렇다면 아마 그 구두의 주인은 굉장히 프로패셔널 하지만, 또한 상냥해서 문제가 생기면 누구라도 그를 통하고 싶을 것이다. 

국내에 몇 안 되는 커스텀 키보드 설계자 ‘줄이오’(본명 이이호). 그가 설계한 하우징(키보드 몸체), 보강판(키캡과 기판 사이의 판), 기판(PCB : 집적 회로, 저항기 또는 스위치 등의 전기적 부품들이 납땜 되는 얇은 판) 등을 바탕으로 커스터마이징한 ‘TX 키보드’. 키보드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줄이오’의 하우징으로 커스텀 키보드를 제작하면 ‘졸업’이라고 표현하는데, ‘졸업’, 그 명성 그대로였다.  

커스텀 키보드 설계자 ‘줄이오’(본명 이호)의 하우징, 보강판, 기판 등으로 커스터마이징한 'TX키보드'

어디를 쳐도 균일하고 단단함이 느껴진다. 쇠의 딱딱함보다는, 근육을 만지는 것과 비슷한 부드러운 단단함이다. 무엇보다 타건감에 중점을 뒀다는 ‘줄이오’의 말대로, 타건감은 고가의 기성품 키보드와도 차이가 있다. 

어느 축을 쓰더라도 묵직하고 안정적인 느낌이 나는 첫 번째 이유는 황동 보강판에 있다. 황동으로 보강판을 제작하려면 CNC공작기계(컴퓨터 수치제어 장치를 결합한 자동화 공작 기계)로 가공해야 하고, 녹이 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화학처리도 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보강판보다 제작비용이 더 많이 든다. 그러나 황동으로 만든 보강판은 부드럽고 단단하게 충격을 흡수하기 때문에 손의 피로감이 덜하다. 플라스틱, 카본 보강판 등은 레이저로 자를 수 있기 때문에 제작이 쉬운 반면, 키감이 가볍고, 스테인리스 보강판은 너무 딱딱하고, 알루미늄 보강판은 너무 통통 튄다. 물론, 키감은 개인적인 취향이다. 

타건음(타건했을 때 나는 소리) 또한 어느 키를 누르든 균일하며, 어느 스위치를 끼우든 베이스는 안정적인 저음이다. 황동 보강판이 이 저음에 큰 기여를 했음은 물론이다. 이에 더해 줄이오는 스위치마다 다른 울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하우징 공간을 계속해서 조정해왔다고 한다. 2017년까지 학원에서 수학과 과학을 가르쳤으며, 10년여 월급 대부분을 키보드에 쏟아부었다는 ‘줄이오’의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지점이다. ‘줄이오’는 “문제가 있으면 해결을 해야 하는 강박이 있다. 불편한 점을 개선하려고 이것저것 하다 보니 커스터마이징이 적성에 맞는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외형적으로는 묵직하다. 그래서 두껍거나 무거운 키보드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단점일 수 있다. 그러나 ‘TX키보드’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커스텀 하우징은 주로 두께가 있는 알루미늄으로 제작한다. 알루미늄도 무겁지만, 보통 키보드 밑에 무게판을 추가하기 때문에 더 무겁다. ‘TX 키보드’ 역시 가장 가벼운 제품이 1.78kg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5kg 정도 된다. 그러나 무게는 어떤 이들에게는 단점이나 어떤 이들에게는 장점이다. 아무리 타이핑해도 키보드가 밀리지 않아 특히 프로 게이머들이 선호한다. 

‘TX 키보드’는 묵직하지만, 디자인적으로 투박하지 않다. 기성품 키보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격이 없는 것은 커스텀 키보드라면 당연할지 모른다. 하지만 ‘줄이오’의 하우징은 여기서 더 나아가 투박한 ‘기계’라기보다는 군더더기 없는 ‘로봇’, 매끈한 ‘애플’의 하드웨어 느낌이 난다. 실제로 ‘TX 키보드’의 하우징은 ‘애플’의 키보드와 마우스를 생산하는 중국 알루미늄 공장에서 제작한다. 이 공장과 계약하기 위해 중국에서 1년여를 뛰어다녔다고 한다. 공제(공동제작) 때마다 ‘줄이오’는 그의 중국인 아내와 함께 중국에 방문한다. 사족이지만, TX는 그의 아내 이름의 약자라고. 2017년 학원 일을 접고 뛰어든 키보드 사업을 아내가 말릴까 봐 일부러 아내의 이름으로 지었다고 한다.   

크게 구분하면, 외형적으로는 텐키리스(숫자 키패드가 없는 형태) 키보드 ‘TX87’과 윈키리스(윈도우키가 없는 형태) 키보드 ‘TX84’로 나뉜다. ‘줄이오’에 따르면 ‘TX87’이 ‘TX84’보다 8:2 비율로 더 잘 팔리지만, 윈도우키가 없어 키의 좌우가 대칭인 ‘TX84’가 미학적으로 더 좋다는 사람도 많다. 일각에서는 윈도우키가 없는 ‘TX84’가 동물의 송곳니 같다고 말한다.  

'줄이오'가 설계한 'TX키보드' 하우징

내부적으로는 SE가 붙은 제품과 그렇지 않은 제품이 다르다. SE가 붙은 제품은 키캡과 기판 사이의 황동 보강판을 키보드 상판에 볼트를 이용해 고정한다. 반면, SE가 붙지 않은 제품은 보강판을 상하판 사이에 볼트 없이 샌드위치처럼 고정한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키보드가 상판고정방식이었으나, 요즘 사용자들은 샌드위치방식을 선호한다. 네 개 면에서 보강판을 균일하게 고정해 타건감이 좀더 단단하고 균일하기 때문이다. 한편, 샌드위치방식은 유격이 있다면 타건감이나 타건음에 치명적이지만, ‘TX키보드’의 하우징은 과거부터 유격 없이 보강판을 잘 잡아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SE를 선택하느냐 마냐의 차이 역시 개인의 취향이다. ‘줄이오’에 따르면, 갈축을 좋아하는 사람은 통통 튀며 울림이 있는 SE를 선호한다. 흑축 같은 단단한 키감을 좋아하는 사람은 샌드위치방식을 택하는 편이다.      

다른 설계자들의 커스텀 하우징과 비교해서 구매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다는 점은 희소식이다. 공제자(공동 제작자 : 설계자의 하우징 등을 공동으로 구매하는 사람. 공동 구매자와 비슷한 말.)를 모으는 이른바 ‘설계자’들은 ‘줄이오’를 제외하고 대표적으로 ‘키보드랩’(키보드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의 운영자 ‘덕’(이하 온라인상 예명)과 해외공제를 주로 하는 ‘라이프존’, ‘고래·돌고래 키보드’를 제작하는 ‘린삼’이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공제는 본업이 아닌 부업이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대부분 적은 수량을 제작한다. 반면 ‘줄이오’는 2017년 국내에서 유일하게 키보드 커스터마이징을 전업으로 삼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제수량보다 많이 생산하고, 재고를 공제자 이외의 사람들도 구매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공제자가 100명이라면 200개를 만들어 재고를 남겨둔다. 또한, 보통 다른 설계자들은 6개월 혹은 1년을 주기로 공제할 사람을 모으지만, ‘줄이오’는 2~3개월마다 공제자를 모은다. 디자인은 호불호가 갈리지만, 공제 주기가 짧으니 디자인도 다양할 수 있다. ‘TX키보드’ 매장에서 ‘줄이오’의 조언에 따라 자신만의 키보드를 제작할 수 있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일지도 모른다. 가격은 30만원 내외에서 형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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