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존엄성 지켰는데 오히려 불평등해지다니… ‘평등한 인격, 불평등한 몸’
[책 속 명문장] 존엄성 지켰는데 오히려 불평등해지다니… ‘평등한 인격, 불평등한 몸’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9.07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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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이 모든 혼란이 인간에게 자기 몸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해주는 게 인간의 존엄성을 모독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자. 

잘린 손이라니, 생각만 해도 징그럽다. 
우리의 안락한 가정생활 속에는 절단되고 불타고 중독되고 마비되고 감전될 일들이 꾸준히 늘어난다. 정원 가꾸기와 목공은 산업재해를 부르주아화했다. 그 바람에 손의 절단은 집 안에서의 사고통계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그런데 잘린 손은 굉장한 혼란의 씨앗이다. 이 불길한 물건의 존재를 인정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잘린 손은 대체 무엇인가? 끔찍한 작은 시체? 아니면 아직 살아있는 어떤 것? 이 생뚱맞고 구역질 나는 존재를 잊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게다가 이 잘린 손을 누가 훔쳐 간다고 상상해보자…. (중략)

자, 이 멋진 프랑스 법의 독트린을 보자. 법이 지상의 존재들을 사람과 사물로 나누는 만큼, 또한 사람의 몸은 사람이 존재들을 사람과 사물로 나누는 만큼, 또한 사람의 몸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표시인 만큼, 몸이 (상품은 말할 것도 없고) 물건과 공통점을 갖는 것은 엄격하게 배제해야 한다. 사람의 몸은 그 전체성 속에서 인격과 동일시되므로, 그리고 몸에서 분리된 신체의 부분은 불가피하게 물건이므로, 프랑스 법의 독트린은 이리하여 ‘신체의 부분은 몸에서 분리되는 순간 물건이 된다’고 결론짓는다. 하지만 그렇다면, 잘린 손이 절단의 순간에 비로소 물건이 된다면, 손은 무주물의 최초 점유자에 대한 법에 의거해 그것을 처음 집어 든 사람의 차지가 될 수 있다. 다우드 사건에서 죄수는 자신의 잘린 손가락을 집어 들었고, 법무장관에게 그것을 보내겠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했다. 다우드는 의심의 여지없이 자기의 잘린 손가락의 소유자가 됐다. 교정당국이 그에게서 손가락을 압수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반면 우리의 공상-재판에서 희생자는 사고의 순간 기절했고 바로 그 순간 그의 원수가 손을 차지했다. 후자는 그러므로 절도죄로 기소될 수 없다. 그는 사고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물건, 즉 무주물의 최초 점유자로서 그것의 주인이 됐기 때문이다. 프랑스 법의 독트린의 논리 안에서는 손의 유사절도범 혐의자는 무죄 방면돼야 한다. 희생자가 이 손을 부정한 방법으로 빼앗는다면, 도리어 그가 절도 혐의로 기소돼야 할 것이다. 

같은 논리에 의해, 이웃이 직접 희생자의 손을 잘랐다면, 그리고 희생자가 어떻게 해보기 전에 손을 낚아챘다면, 그 이웃은 물론 중상해죄를 선고받기는 하겠지만, 여전히 손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이 모든 혼란이 인간에게 자기 몸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해주는 게 인간의 존엄성을 모독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자.  

터무니없다고? 
물론이다. 바로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쓰는 것이다.  <19~28쪽>

『도둑맞은 손』
장 피에르 보 지음│김현경 옮김│이음 펴냄│364쪽│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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