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우리 모두는 선량한 차별주의자 입니다
[리뷰] 우리 모두는 선량한 차별주의자 입니다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09.04 1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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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누구를 인신공격하면 제삼자는 다 웃게 돼 있다. 당하는 사람도 웃을 수 있는 게 개그지, 상대방이 기분 나쁘고 불쾌해하면 그건 좋은 개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난 2009년 MBC ‘명랑히어로’라는 프로그램에서 최양락이 한창 최고조에 달했던 김구라의 ‘독설 개그’를 지적하며 했던 말이다. 기자는 최양락의 말이 참 옳다고 생각했고, 그때부터 누군가를 인신공격해 웃음을 도모하려는 일부 방송인들의 행태가 곧잘 눈에 띄었다. 당시 국민 MC라고 불렸던 유재석, 강호동 다 마찬가지였다. 특히 KBS '해피투게더'에서 유재석과 박명수가 신봉선을 활용하는 방식을 보면 자주 채널을 돌려버리기도 했다.

“옛날에 오빠, 여자 게스트들 많이 오면 다 편하게 쉬라고 하고 나만 일 엄청나게 시키고 그럴 때, 나 매일 나이 많다고 놀리고 허리 길다고 놀리고 그럴 때, 물론 재미로 그랬지만 좀 미안한 마음은 없었어?”

지난달 처음 방영된 JTBC '일로 만난 사이'에서 이효리가 대뜸 유재석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우월한 자존감으로 치면 둘째 가라도 서러울 이효리가 유재석의 행동을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쌓아두고 있었던 것. 물론 '연예계의 신사' 유재석이 나쁜 의도로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당시 예능 작법 중 하나였을 수도 있고, 그는 책 제목 그대로 ‘선량한 차별주의자’였을 뿐이다. 어쨌거나 유재석은 방송을 통해 이효리에게 사과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김지혜 작가는 혐오 표현에 관한 토론회에서 ‘결정장애’라는 말을 쓰고 난 뒤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했다. ‘결정장애’라는 말에는 ‘장애’ 그 자체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그런 관념 속에서 ‘장애인’은 늘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라는 무의식적 차별이 깔려있다. 그러니까 무언가에 ‘장애’를 붙이는 건 장애인에 대한 혐오이다. “암 걸리겠다”라는 말이 실제 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겐 심한 상처가 될 수 있는 점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 책은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차별이 어떻게 ‘정당한 차별’로 위장되는지 그리고 이러한 차별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가 어때야 하는지를 풍부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김 작가는 “차별에 관한 책을 한 권 마치는 이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차별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없다”라며 “아직도 많은 차별이 눈에 보이지 않고, 안타깝게도 틀림없이, 이 책에도 훗날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할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선량한 차별주의자이다. 누군가를 차별하고, 누군가로부터 차별당한다. 그래서 우리는 ‘프로 불편러’가 되어야 한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여성, 장애인, 성 소수자, 이주민 등을 대할 때는 특히 그렇다. 지금 이 기사 안에도 무의식적 차별이 내재해 있을 수 있다. 혹 그런 표현이 있다면 똑똑한 독자들이 댓글로 남겨주길 바란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창비 펴냄|243쪽|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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