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원전은 역병이다” 일본 최초 원전 만든 이들이 수십년 지나 털어놓는 증언
[책 속 명문장] “원전은 역병이다” 일본 최초 원전 만든 이들이 수십년 지나 털어놓는 증언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9.0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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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그날 아사히신문은 이 ‘위업’을 1면에 실어 칭송했다. 
“(세계적 흐름에) 뒤처진 원자력 산업을 되살리려는 일본 원자력연구소의 노력이 빛을 발해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폭탄 이후 12년 만에 도카이무라에 ‘제2의 불’이 켜진 것이라 의미가 크다.” 
미국이 세계 최초로 원자로 임계에 성공한 지 15년, 도카이무라에 일본원자력연구소를 설치하기로 결정한 지 불과 1년 4개월 만의 일이었다. 
일본의 원자력 개발은 이때부터 가속된다. (중략)

그러나 위원장이었던 1999년, 도카이무라에 있는 핵연료 가공 회사 JCO에서 일본 첫 임계 사고가 일어난다. 위기관리 의식이 결여된 조직이 허술한 방식으로 핵연료를 제조하다가 두 명의 사망자를 낸 대참사였다. 
“어느새 ‘안전 신화’가 생겨나고 방심과 교만, 방자함이 만연했다.”
이듬해, 위원회에서 물러났다. 
사토가 이때 느꼈던 회한의 고통을 다시 맛본 건 12년 뒤 3월 11일이다. 

원전 추진자의 통탄

동일본 대지진 다음 날. (중략)
12년 전에 지은 집이 백미러 속에서 점점 작아진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긴급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가와우치무라 사무소로 피난하시기 바랍니다.” 
오전 9시경, 마을의 재난대응 무선통신망에서 방송이 흘러나왔다. 차에 실은 것은 조상의 위패와 옷가지, 식료품, 그리고 작업용 노트북. 
“얼마 동안이나 피난해야 할까요?” 하고 묻는 아내에게 “기껏해야 2~3일이야”라고 대답했다.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자신이 추진해온 원전이 일으킨 대참사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피난자 15만명 중 한 사람이 됐다. (중략)

40년 가까이 업계에 종사하며 느낀 전력회사의 형식주의와 폐쇄적인 체질, 안전을 위협하는 하청 및 재하청 발주 구조를 현장 관리자 입장에서 호소했다.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문제라는 원전의 아킬레스건도 정면으로 지적했다. 
하지만 설마하니 근본이 되는 ‘안전이 무너지는 사태가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주민 설명회에서 중대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만년에 한 번”이라고 대답했던 그였다. 
지금 기타무라는 이렇게 회상한다. 
“회사는 전기출력을 높이고 검사기간을 단축해 가동률을 높이려고 혈안이 돼 있었다. 효율성을 추구한 나머지 원자로와 핵연료에 대한 경계심이 허물어지고 말았다.” (중략)

원전은 ‘역병’이다. (중략)

그런데 일본에서 가장 오랫동안 원자력의 혜택을 받아온, 원전 건설의 원조라고도 말할 수 있는 도카이무라의 촌장이 동일본대지진 이후 공식적으로 ‘탈원전’을 선언하고 나섰다. 
그 소식은 전국에서 재가동 반대 운동을 펼치는 시민단체의 사기를 높이는 동시에, 이른바 ‘원자력 무라’(원자력과 일본 행정구역인 ‘무라’가 합쳐진 말로, 원자력 발전 업계를 둘러싼 이해관계 집단을 뜻하기도 함) 주민들을 자극했다. 
촌장 무라카미 다쓰야의 주장은 명쾌했다. 원전 머니(money)는 일시적으로는 지역을 풍족하게 해주지만, 주민에게서 자립 및 자율의 희망과 긍지를 빼앗아 결국에는 공동체를 파괴한다. 거액의 자본에 영혼을 팔아 일장춘몽을 꾼들 주민이 풍족해지기는커녕 고향까지 잃을지 모른다. 원전은 ‘역병’이다.  <8~16쪽>

『그럼에도 일본인은 원전을 선택했다』
아사히신문 취재반 지음│김단비 옮김│호밀밭 펴냄│336쪽│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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