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법은 있는데 강사가 없다
강사법은 있는데 강사가 없다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09.0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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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8일 서울 청와대 분수 앞에서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이 '강사법 시행 첫 학기를 맞이한 입장 발표 및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 안정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강사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강사법이 시행됐는데 강사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강사들은 ‘수업 준비’가 아닌 ‘생존 준비’를 위해 학교 밖을 배회하고 있다. 이제 막 박사과정을 수료한 신진연구자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학자금 대출 원금 상환 일은 다가오고 있는데 강의도 없고, 수입도 없다. 학부와 대학원을 통틀어 20년 가까이 공부했지만 남은 건 학위 논문뿐이다.

지난달 29일 교육부는 ‘19년 1학기 강사 고용현황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교육부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년도 1학기 대비 전체 강사의 실질 고용 규모 감소는 7,834명이다. 특히 다른 직업이 없는 전업 강사의 실질 고용 규모 감소는 4,704명으로 지난해 대비 15.6% 감소했다. 지난달 1일부터 시행된 강사법으로 인해 강사들의 고용 안정 보장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기 위한 대학들의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고육지책이 편법이 되는 경우도 있다. 대학은 비용 절감을 위해 시간 강사를 강사법 울타리 밖에 있는 ‘겸임 교수’ ‘초빙 교수’의 형태로 편법 채용한다. 실제로 서울의 모 대학은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시간 강사를 불러 겸임 교수로 채용해줄 테니 4대 보험이 보장되는 회사에 위장 취업을 하고 오라는 식의 요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계약을 맺으면 대학은 기존 시간 강사 제도와 비슷한 근로조건으로 강사를 채용할 수 있게 된다.

인문사회·예체능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올해 1학기 전업 강사 해고자 수는 인문사회 1,942명, 예체능 1,666명으로 자연과학·공학·의학 분야 해고자 수를 다 합친 것보다 3배 이상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석사급 연구자들이 박사과정에 진학하는 대신 취업을 선택하고, 박사과정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는 연구자들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질의 학문 후속세대 확보에 빨간불이 켜졌다.

강사법 시행으로 대학은 강사를 1년 이상 임용하고,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3년 동안 재임용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이 때문에 올 8월부터 박사 학위를 취득한 신진연구자들은 강의 경력을 쌓기 위한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게 된다. 3년이 지나고 나서 강사 채용에 지원하더라도 이미 강의 경력이 풍부하고 논문 실적이 우수한 선배들에게 경쟁력 면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강의 경력은 전임 교원 임용 과정에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시간강사연구지원 및 대학 평생교육원 연계 강좌 개설로 강의 기회 상실 강사에 대한 연구·교육 안전망 마련하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강의를 하지 않고 논문에만 집중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수입적인 측면에서도 그렇고,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적극적으로 호흡할 때 양질의 논문이 나올 수 있는 점을 고려하면 강사들을 위한다는 강사법이 신진연구자들에겐 여러모로 아쉬울 수밖에 없는 셈이다.

앞선 언급처럼 교육부는 19년 추경 예산에 반영된 ‘시간강사연구지원사업’을 통해 연구 역량이 우수한 박사급 비전임 연구자가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사 학위를 취득하지 않고 수료만 한 이른바 ‘비박사’급 비전임 연구자의 비율이 높고, 대학이 꼼수로 채용한 겸임 교수나 초빙 교수는 해당 사업의 혜택을 받을 수 없어 복지의 사각지대가 넓다. 이에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은 신진연구자의 강사직 진입 장벽을 타파하기 위해 ‘학문 후속세대(박사학위 미소지자 포함) 임용할당제’를 요구하기도 했다.

강사법 시행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로 돌아간다. 강사 수를 줄이게 되면 전체 강좌 수는 줄어들고, 전임 교원(정교수, 부교수, 조교수)이 담당하는 강좌 당 학생 수는 늘어난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은 수업권에 침해를 받게 되고, 전임 교원은 업무 부담이 가중돼 수업의 질적 관리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강사 수가 줄어드는 고통이 있더라도 강사법이 시행돼 강사들의 근로조건이 향상돼야 한다는 등 내부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쓴 김민섭 작가는 해당 책을 통해 시간 강사의 열악한 처지를 세상에 알렸다.

“내가 강의하는 학교의 강사료는 시간당 5만원이다. 그러면 일주일에 20만원, 한 달에 80만원을 번다. 세금을 떼면 한 달에 70만원 정도가 통장에 들어오는데, 그나마 방학엔 강의가 없다. 그러면 70만원 곱하기 8달, 560만원이 내 연봉이다. 박사수료 때까지 꼬박 메꾼 학자금 대출에서 한 달에 20만원 정도를 떼어가고, 이런저런 대출과 공과금을 하면 내가 쓸 수 있는 돈은 한 달에 10만원이 고작이다. 이걸로 남은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신용등급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 지 오래고, 전화가 오면 앞자리가 02-1588로 시작하는지 확인 후 전화기를 돌려놓는다. 이런 생활이, 몇 년째고,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학생들에겐 허울 좋은 젊은 교수님이다. 그들은 내가 88만원 세대보다 더 힘들게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까.

책이 출간된 후 5년이 지났다. 그때보다 강사들의 처우는 개선됐지만, 강사들이 사라졌다. 강의 기회를 얻지 못한 강사들에겐 저 참담한 상황마저 부럽지 않을까. 처우 개선을 요구할 자리 자체를 잃었으니까. 강단이 아닌 학교 밖을 배회하는 강사들을 위한 교육부의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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