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날 식탁 앞에서 풀면 좋은 ‘썰’ 한보따리… ‘맛’과 ‘멋’ 챙기세요
추석 날 식탁 앞에서 풀면 좋은 ‘썰’ 한보따리… ‘맛’과 ‘멋’ 챙기세요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9.02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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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천고마비’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이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달은 9월이다. 가을 하늘이야 10월과 11월에도 늘 높지만, 9월에는 추석이 끼어있기 때문이다. 배, 포도, 전, 수육, 닭, 약과… 전국 각지에서 모인 친척들이 음식을 쌓아놓고 먹지만, 좀처럼 줄어들지는 않는다. 결국 양손에 한 보따리씩 음식을 짊어지고 돌아가는 귀성길 풍경은 9월의 정겨운 ‘맛’이다. 

이렇게 그 ‘맛’으로 포문을 여는 9월. 그런데 그저 살만 쪄서 되겠는가. 요즘 말로 하면 ‘스웨그’(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특정한 멋과 분위기)가 없다. ‘맛’이라는 단어에서 점 하나 살짝 다르게 찍어 ‘멋’도 챙겨보는 것은 어떨까. 9월, 식탁 앞에서 멋지게 풀어놓을 수 있는 음식 관련 썰을 소개한다. 알아두면 쓸모 있다. 음식을 앞에 두고 쉴 새 없이 지식을 뽐내는 tvN 예능프로그램 ‘알쓸신잡’의 출연진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추석 상차림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반찬 ‘숙주나물’을 씹으며 이야기의 포문을 열어보자. “숙주나물에 ‘숙주’가 사람 이름인 거 아세요?” 
역사교사 송영심의 책 『음식 속 조선야사』에 따르면 숙주나물의 원래 이름은 녹두나물이었다. 조선시대 때만 해도 생일상에나 올리는 귀한 나물이었던 녹두나물이 숙주나물로 불리게 된 이유는 쉽게 상하는 숙주나물의 특성 때문이다.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 세조를 지근거리에서 보필한 신숙주를 백성들이 ‘변절자’라고 욕하며 녹두나물을 숙주나물로 부르게 된 것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당시 백성들이 만두소를 만들 때 녹두나물을 짓이겨서 넣었는데, 변절자인 신숙주도 그렇게 취급받아야 한다고 해서 숙주나물로 불리게 됐다는 설도 있다.    

한가위의 하이라이트인 송편을 가지고도 할 말은 많다. 일단 송편을 반달 모양으로 빚는 이유는 보름달이 뜨는 추석, 반달이 차올라 보름달이 되듯 풍성하기를 바라는 희망을 담기 때문이다. 송편과 관련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조선 숙종이 어느 날 남산골로 미행을 나갔다가 한 선비가 오두막집에서 글을 읽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선비가 아내에게 출출하다고 하니 남편 옆에서 삯바느질하던 아내가 벽장 속 주발뚜껑(밥그릇 뚜껑)에서 송편 두 개를 꺼내 한 개를 선비의 입에 넣어주고 선비는 남은 송편을 아내의 입에 넣어주었다. 이를 본 숙종이 이튿날 왕후에게 송편을 먹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자 왕후는 궁인들을 시켜 푼주(아래는 뾰족하고 위는 짝 바라진 사기그릇)에 송편을 높이 쌓아 내왔다. 숙종은 자신을 돼지로 생각하느냐며 그릇을 내동댕이쳐버린다. ‘푼주의 송편 맛이 주발뚜껑 송편 맛만 못하다’는 속담이 이때부터 생겨났다.    

인절미를 조청에 찍기 전에는 인절미와 인조, 그리고 ‘이괄의 난’의 상관관계에 대해 읊어보자. 인절미는 예로부터 만들기 쉬우면서도 맛이 좋아 백성들이 즐겨 먹던 떡이었다. 그러나 왕실에서는 흔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1624년 이괄이 반란을 일으켜 한양 코앞까지 진격하자 인조는 한양을 버리고 공주로 도망친다. 공주에서 가장 높은 산성인 공산성에서 이괄이 무혈입성한 한양 쪽을 바라보는 인조에게 공주에 사는 한 부자가 광주리 가득 무언가를 담아 바쳤는데 이것이 바로 인절미였다. 그 맛에 감탄한 인조가 떡의 이름을 물었으나 아무도 알지 못 했기에 인조가 이름을 붙였다. 가장 맛있는 떡이라는 의미의 ‘절미’에 임씨 집안에서 가져왔다고 해서 ‘임’을 붙여 ‘임절미’라고 부른 것이 오늘날 인절미가 됐다.    

끝이 아니다. 후식이 남았다. 달달한 약과를 들고 이렇게 말해보자. “약과의 옛 이름이 ‘유밀과’예요.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먹는 거였고, 고려시대에는 사치품이었다고 해요. 이걸 만드느라고 백성들이 허리가 휘어서 나라에서 금지하기까지 했대요.” 
조선시대 ‘여중군자’(女中君子)로 불린 덕망 높은 여성 장계향이 조리법 백여 가지를 후손에게 전해주기 위해 쓴 책 『음식디미방』에 따르면 ‘유밀과’라고 불린 약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밀가루 1말에 꿀 2되, 기름 5홉, 술 3홉, 끓인 물 3홉이 필요하다. 이 재료들을 합해서 반죽해 모양을 만들고 기름에 지진다. 이후 즙청 1되에 물 1홉 반을 타서 묻힌다. 호화스러운 재료에 전부 까다로운 수작업이었으니, 『고려사절요』와 『조선왕조실록』 등에 따르면 10명이 넘는 왕들이 모두 물가가 상승하거나 가뭄이 들었을 때 ‘유밀과’ 금지령을 내린다.  

물론, 그저 모여서 먹기만 해도 되는 9월이지만, ‘맛’과 함께 ‘멋’도 챙긴다면, 일 년에 몇 번밖에 보지 못해 서먹해진 친척들과의 관계도 한가위 보름달처럼 차오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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