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육아의 속도
[스미레의 육아에세이] 육아의 속도
  • 스미레
  • 승인 2019.08.21 1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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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조금 넘는 짬을 내어 유럽에 다녀왔다. 바쁘다, 바쁘다 종종대며 제자리만 멤돌다 궤도를 이탈해 버린 것이다. 별 준비도 없이, 일정 담당자인 남편에게 한 가지 부탁만 한 채로 여행길에 올랐다. 

- ‘빨리 걷지 않을 것.’ 

도시는 저마다에 어울리는 속도를 갖는다. 화가 데이빗 호크니는 L.A의 건물과 표지판이 시속 48.3km에서 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고 했다. 

로마는 3.2km. 서울은 아마 200km 쯤 될 것이다. 이번에 다녀온 도시들의 속도는 ‘매우 느림’이었다. 밀도가 낮은 풍경 속에서 사람들은 걷거나 뛰는 대신 부유하는 듯 보였다.

각자의 속도를 가진 그 모습은 편안했다. 그러나 아이는 볼이 퉁퉁 부었다. 이해한다. 어딜 가나 기다림의 연속이었으니까.

공항에서도, 음식점에서도 뭐 하나 빠르게 진행되는 게 없었다. 특히 독일은 지연과 지체로 악명 높은 곳이어서, 호기롭게 왔다가 복창 터져 돌아간 사람이 그리 많다고.

아니나 다를까, 그런 일은 우리에게도 일어났다. 공항으로 가던 기차가 40분이나 멈춰 선 것이다. 예상했던 일. 다만, 짜증을 낼 줄 알았던 아이가 잠잠했던 건 예상 밖의 일이었다. 아이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새로 산 놀잇감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창밖을 바라보고, 지도를 펼친다.

여행의 끝에서 아이는 기다림을 즐기고 있었다.

어쩌면 여행 내내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기다림의 틈새로 아이는 무언가를 부단히 살피고 그려 넣고 붙잡았다.

도시마다 신호등과 맨홀 모양이 어떻게 다른지 관찰했고, 상점에서 들려오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틈틈이 소지품을 점검하고 보이는 것들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했다. 질주가 차단된 곳에서 시야가 선명해지고 의식의 체가 촘촘해졌다.

한참을 멈춰 선 아이의 시선 끝엔 단풍나무 씨앗이 핑그르르 돌며 떨어지고 있었다. ‘가자’는 말을 꾹 눌러 참았다. 기다림이 불편이라면, 그 불편의 이면엔 어떤 안온이 있음을 그렇게 배워가기를 바랐다.

아이는 느리게 걷기의 대가였다. 길가에 늘어선 차들을 보느라 시속 1mm로 걸었다. 나는 무료함에 몸이 꼬이고 목이 말랐다.

쾰른 대성당보다 그 앞의 하수 시스템을 더 유심히 보는 아이를 끌어내 성당의 역사를 읊어주고도 싶었다.

분수를 마주치면 또 한세월이다. 그러나 동네 아이들과 노느라 폭 젖어버린 아이를 다그치진 못했다. 그날따라 분수는 아름다웠고 아이들은 행복했기 때문에.

여행 초반엔 마음이 급했다. 막상 와보니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았다.

차 구경하는 아이 위로 ‘어서 가자’는 말을 돌림노래처럼 쏟아냈다.

셋째 날인가. 호텔에 있고 싶다는 아이 말에 화가 나, 방을 나와 버렸다. 가보고 싶던 미술관을 지척에 두고도 갈 수 없어 답답했다.

혼자 걷고 또 걷다 깨달았다. 원래 아이와의 여행은 그런 것이다.

아이는 갑자기 새로운 곳에 떨어졌다. 언어도, 음식도, 시간도 다른 곳에서 적응하느라 부침을 겪고 있다.

그걸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하여, 천천히 걷자 부탁한 건 나였는데.

육아 최대의 난제는 기다리는 일이다. 기다림은 힘들고 힘들어서 서럽다.

음식을 가지고 장난을 쳐도, 블록을 못 맞춰 끙끙대도 참아야 한다.

그러나 일방적 희생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로 인해 내겐 조금 느린 속도가 더 어울린다는 걸, 그렇게 한 발짝씩 나아가도 괜찮다는 걸 알아간다. 지치지 않을 만큼의 속도와 강도를 의식한다. 걸음은 느리지만 마음은 조급하던 내가 조금 덜 보채게 된 것도 같다.

육아의 속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른의 보폭과 성미로 서두르고 있는 건 아닌지. 아이는 이방의 땅에 갑자기 떨어진 여행자다. 불과 며칠, 몇 달, 몇 해 전 밀쳐지듯 여기에 왔다. 위대한 존재가 되기 위해, 부모가 바라는 어떤 모습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살기 위해 적응을 겪어낸다.

돌아와 사진을 보니 비로소 좋다. 아이는 도시의 여기저기, 수많은 차와 분수대 앞에서 사진에 찍혔다. 행복에 함뿍 젖어 웃고 있다. 
그땐 왜 몰랐을까. 그 웃음, 그 낯빛. 한 박자 느리게 보니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인다. 

다녀온 사이 마당의 무화과가 선명히 익어있다. ‘언제 익나’ 싶던 일전의 모습이 무색하다. 아이의 자람도 그렇다. 그대론가 싶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훌쩍 자라있다. 삶의 속도에 대한 막막과 불안을 마당과 아이를 보며 잊는다. 아이와 풀과 나무에 빚을 지며 사는 매일이다.

 

 

■ 작가소개
스미레(이연진)
자연육아, 책육아 하는 엄마이자 미니멀리스트 주부. 
아이의 육아법과 간결한 살림살이, 마음을 담아 밥을 짓고 글을 쓰는 엄마에세이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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