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산촌편’, 자연과 인생 그리고 밥을 노래하는 힐링 예능
‘삼시세끼 산촌편’, 자연과 인생 그리고 밥을 노래하는 힐링 예능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08.21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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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tvN 삼시세끼 산촌편' 공식 홈페이지]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에는 이런 시가 있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위 시는 시집 첫머리에 수록된 「어느 늦은 저녁 나는」이라는 제목의 시다. 한강 작가는 그녀의 첫 시집, 첫 번째 시에서 ‘밥’을 노래했다. 시가 “자연과 인생을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것”이라면, 한강 작가에게 밥은 자연과 인생의 함축이자 운율인 셈이다. 요컨대 한강에게 밥은 생의 의지에 다름 아니다. 밥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어야하는 우리의 삶 그 자체인 것이다.

시집이 출간되고 2년 뒤에 이서진과 옥택연이 강원도 정선에서 투덜거리며 밥을 지어 먹는 프로그램이 방영됐다. ‘나영석이 예능으로 자연과 인생을 노래하려 하는구나.’ ‘삼시세끼’ 시리즈는 “이 프로그램 망했어”라고 일갈한 이서진의 푸념과 달리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 연령층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그 인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떠난다. 먹는다. 돌아온다. ‘삼시세끼’는 이 세 가지 행위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프로그램 속 출연진들은 자연으로 떠나고, 거기서 밥을 지어 먹으며, 다시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를 두고 ‘노마디즘(nomadism)’ ‘탈중심(decentering)’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운운해가며 분석하지 않아도 대중들은 안다. 거기엔 우리가 이제껏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소중하게 다루는 손길이 있다는 것을. 동시에 그 손길은 우리 보편의 삶을 어루만지고 있다는 것을. 자신의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할 사람은 없을 터. 탄생이 ‘떠남’이고, 죽음이 ‘돌아옴’이라면 우리는 그 사이에서 밥을 지어 먹을 따름이다.

주지하다시피 ‘삼시세끼’에서 중요한 것은 연예인이 아니라 그들이 지어먹는 ‘밥’이다. ‘밥’을 통해 그들은 잠시나마 식구가 된다. 가족의 의미를 뜻하는 식구(食口)는 밥 ‘식’에 입 ‘구’로 이루어진 단어다. 모름지기 가족이란 함께 밥을 먹는 존재인 것. “언제 식사 한 번 같이 해요”는 “안녕하세요?” “반가워요!”라는 인사의 또 다른 판본이다. 그래서 밥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나영석은 ‘밥’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프로그램과 대중들을 연결했다.

조금 저널리스틱하게 말해볼까. TV는 늘 대중의 결핍된 욕망을 전시한다. 이 명제를 진실로 받아들인다면, 답은 더욱더 간단하고 분명해진다. 대부분이 워커홀릭(workaholic)인 현대인들에게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하루에 세 번 먹는 ‘밥의 존재’가 결핍돼있다. 도시의 대중들은 자연의 삶을 욕망한다. 나영석은 그 지점을 건드렸고, 대중들은 나영석이 설계한 유명인들의 단사표음(簞食瓢飮)을 통해 자신들의 팍팍한 삶을 치유 받는다.

‘삼시세끼 산촌편’이 조금 더 특별한 이유는 고정 출연진이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점이다. ‘삼시세끼’에서 여성은 늘 손님이었다. 안빈낙도의 삶을 뿜어내는 프로그램에 남성이 아닌 여성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나영석은 이제 그 자리를 여성에게 내어주었다. 염정아와 윤세아, 박소담이 시원한 보리차를 마시며 마루에 앉아있고, 연예계에서 가장 도회적인 남자 정우성이 쪼그려 앉아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속으로 ‘이번 시즌도 성공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삼시세끼 산촌편’은 2회 만에 평균 시청률 7.8%(닐슨코리아 제공)를 기록, 자체 최고 시청률 경신은 물론 동시간대 1위를 달성했다.

에세이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에서 박완서 작가는 새로 지은 밥에 강된장과 찐 호박잎만 있으면 밥이 마냥 들어간다고 했다. 성석제 작가는 양념간장을 듬뿍 넣고 잘 저은 다음 묵밥을 입에 넣으면 허한 느낌까지 사라진다며 흡족해했다. 홍승우 만화가는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서 ‘먹는 것’을 포기하면서 산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밥’에는 저마다의 작고 소소한 이야기가 있고, 인생의 사유가 담겨있다. 그 작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영석은 자연의 느린 시공간 안에 감각적으로 펼쳐냈다.

‘삼시세끼’의 인기는 언제까지 유효할까. 잘은 모르겠지만 언젠가 프로그램이 폐지될 것은 분명하다. 인기 프로그램이 수명을 다해 폐지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애청자들은 벌써부터 불안하다. 하지만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모르긴 몰라도 나영석은 시대의 요구와 감수성을 정확히 파악해 ‘삼시세끼’와는 또 다른 화법으로 자연과 인생을 노래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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