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작은 카페, 서점, 동네술집… 삶을 풍요롭게 하는 제3의 장소의 중요성
[책 속 명문장] 작은 카페, 서점, 동네술집… 삶을 풍요롭게 하는 제3의 장소의 중요성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8.21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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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동네 사람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 아무런 관계도 없던 사람들을 서로 어울리게 만드는 ‘또 하나의 집’에 대한 나의 관심은 거의 내 나이만큼이나 오래됐다. 아이들은 주변 사람들의 인간관계가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본능적으로 적응하고 기쁨과 평안을 느끼는 듯하다. 그 느낌은 어른들이 친구들과 만나 긴장을 풀고 웃을 때 느끼는 충족감과 같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5학년 때였던 것 같다. 그해 겨울 사촌 형들이 나를 데리고 동네 스케이트장에 가더니 휴게실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거기에는 몸을 녹이며 즐겁게 노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함께 어울리는 기쁨을 맛봤다. 그 후로 나는 한 번도 그 맛을 잊어본 적이 없다. 

이후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분명한 목적 없이 서로 어울려 시간을 보내는 일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비공식적인 모임이 이뤄지는 공공장소의 목적이나 기능은 정부나 기관이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훌륭한 문화를 가진 모든 사회에는 비공식적인 공공생활이 있었고, 그러한 모임을 할 수 있는 그 사회 특유의 장소가 있었다. 

미래를 위해서도 우리 사회에서 비공식적 공공생활이 갖는 중요성을 이해해야 한다. 도시의 성장과 발전 과정에서 미국 사회는 비공식적 공공생활에 적대적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런 모임을 가질만한 장소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과거보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약화됐고, 개개인의 삶도 그리 풍요롭지 못하다. 그래서 이 주제에 관한 논의가 긴급하다. (중략)

나는 비공식적인 공공생활, 그리고 이를 위해 필수적인 장소를 보여주고 싶었다. 미국 사회에서 이러한 장소들이 파괴되고 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이며, 우리는 그런 경향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기제를 갖고 있지도 않다. 젊은 세대에게는 비공식적인 만남이 이뤄지는 장소의 중요성이 피부에 와닿지 않을 것이고, 시민은 여기에 합리적인 논의를 펼치지 못한다. 나의 주장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찬성하는 사람들조차도 반대편 사람들을 설득할 수단이 거의 없다. 점점 합리화되고 모든 것이 관리되는 세상에서, 공적인 삶을 건져내려면 효과적인 논리와 언어가 필요하다. 나의 노력이 비공식적인 공공생활의 필요성을 대중적으로 이해시키는 데 기여하기 바란다. <8~9쪽>

제3의 장소가 가진 첫 번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기능은 주민 ‘통합’이다. 누구나 우체국에 사서함을 두던 시절에는 우체국이 이 기능을 담당했다. 사람들은 늘 걸어서, 또는 차를 타고 우체국에 갔고, 우체국은 24시간 개방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앉을 자리가 없다 하더라도 그곳은 사람들이 만나서 짧게나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였다. (중략)

‘동화’는 제3의 장소가 갖는 또 한 가지 기능이다. 제3의 장소는 방문객들의 ‘통관항’ 역할을 하며, 새로 들어온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처음 인사를 나누는 자리가 된다. 미국 건축가 앙드레 듀아니는 같은 구역에 사는 사람을 만나는 데 이틀이 걸린 사람이 있었다는 농담을 한 적이 있다. 그 이야기는 전후에 만들어진 미국의 주거단지들이 낯선 사람, 외부인, 새로 이주해 온 사람에 대해 극도로 적대적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거리는 텅 비어 있고, 길을 물어볼 만한 동네 가게도 없다. <18~19쪽>

『제3의 장소』
레이 올든버그 지음│김보영 옮김│풀빛 펴냄│464쪽│2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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