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명문장] 김자경 수필가, 연극 ‘조선간장’을 통해 깨달은 ‘온고지신’의 가치
[책 속 명문장] 김자경 수필가, 연극 ‘조선간장’을 통해 깨달은 ‘온고지신’의 가치
  • 김승일 기자
  • 승인 2019.08.17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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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문 김승일 기자] 대학로에서 이번 3월에 보았던 연극 ‘조선간장’을 떠올리며 생각에 젖어 본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간장 담그는 일이 커다란 행사라는 것을 잘 안다. 간장 맛이 좋아야 집에서 만든 모든 음식이 맛있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간장 맛이 좋아 음식이 다 맛있다는 말들을 했다. 때가 되면 늘 간장을 담아왔다. 항상 집에서는 씨간장을 애지중지해 왔다. 하지만 결혼해서부터 지금까지 내 손으로 간장을 담아온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친정어머니 생전에 간장을 담아서 꼭 챙겨주셨기에 나 스스로 간장을 담을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심지어 왜간장을 통한 음식 맛에 길들어 조선간장의 고유한 맛과 소중함을 잊고 살고 있다. 최근에는 새로 나온 ‘연두’로 모든 음식의 간을 맞추고 있다. ‘조선간장’이란 연극을 보면서 새삼 간장에 대한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연극은 조선간장의 근원인 씨간장을 둘러싼 가족 간의 갈등과 화해 등 각종 에피소드를 잘 묘사하고 있다. 씨간장이 거액의 금액으로 거래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자식들과 씨간장에 대한 애착이 강한 노부부간의 갈등이 돋보였다. 자식들은 씨간장을 비싼 가격에 사겠다며 도시에서 온 공장장과 이를 부추기는 이장에게 씨간장을 팔아넘기려 한다. 이 와중에 자식 삼 남매는 자신들의 삶 속에서 어려운 처지와 각종 아픈 사연들을 내세우며 그 해결책이 곧 씨간장을 파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씨간장을 차지하고자 서로 감시하고 싸우며 갈등은 극에 달한다. 전통을 지키려는 과거 세대와 돈으로만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현대 세대, 편하게 사먹는데 익숙한 미래 세대 간의 갈등이 연극 속에 잘 묘사돼 있다. 

연극을 보면서 순간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나는 오래전부터 전통을 무시하고 편하게 사는 데 익숙해 있다. 나도 한때는 ‘장인정신’을 소중히 여기고 문화재에 대한 애정이 강하다고 자부해왔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까다로운 전통 방식을 고수하기보다 편하고 간단한 인스턴트 즉 현대 방식에 익숙해졌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우리 집안의 유교적인 전통을 따르기보다 이를 거부하는 편에 속했다. 내가 앞서 나가고 있는 선구자인 양 이날까지 살아온 것 같다. 연극을 관람하면서 새삼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단어를 새롭게 떠올려 봤다. 연극 말미에는 씨간장을 갖고 도망간 막내아들이 돌아오고 어머니는 큰 며느리에게 씨간장(전통)기술 등을 전수해준다. 가족들이 밥상에 둘러앉아 함께 식사하는 것으로 가족 간에 화해하며 결말을 맺는다. 

이 연극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가족의 사랑과 전통의 소중함을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가족 간 화합도 맞겠지만 문득, 분배 우선주의냐 성장 우선주의냐를 두고 갈등해온 현대 우리 사회문제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연극 속 부모였다면 ‘씨간장’이라는 전통 방식을 우리만 지니겠다고 고수하기보다 씨간장의 기술과 노하우를 공장에 팔아 대량 생산하는 데 기여하는 길을 택했을 것이다. 이를 통해서 다수의 사람들이 우리 간장의 고유한 맛을 느낄 기회를 얻게 된다면 이것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전통은 고수하는 것이 아닌 함께 나눌 때 비로소 그 가치를 발휘한다고 여겨지는 마음이 들었다. 연극 관람 후 시골친척에게 부탁해 조선간장을 준비했다. 모처럼 조선간장을 사용해 옛날 추억의 밥상을 음미해보고 싶어서…!  

<김자경 수필가 「연극 ‘조선간장’을 보며 전통에 대한 고찰(考察)」>

『외숙모의 누름돌』
김자경·오경자·장영교·신수희 외 27명 지음│여울문학회 펴냄│231쪽│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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