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영화 ‘엑시트’ 흥행의 진짜 이유, 영화가 관객의 마음을 가져가는 방법
재난 영화 ‘엑시트’ 흥행의 진짜 이유, 영화가 관객의 마음을 가져가는 방법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08.13 09:45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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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엑시트' 스틸컷 [사진= 네이버 영화]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쉽다. 재미있다. 깔끔하다. 이상근 감독이 연출한 ‘엑시트’가 여름 극장가를 점령했다. 이 감독은 액션과 코미디를 적절히 배합해 전에 없던 재난 영화(disaster film)를 만들어냈다. 카메라의 움직임은 관객으로 하여금 ‘관람’을 넘어 영화를 ‘체험’하게 만든다. 남녀의 사랑은 뻔한 멜로드라마로 귀결되지 않고, 재난을 극복하는 동인으로 활용돼 장르적인 재미를 견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여성을 피해자 혹은 구원받는 자가 아닌 능동적인 구원자로 그려내는 연출은 영화의 젠더 감수성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우선 줄거리를 간단히 살펴보자. 백수 청년 용남(조정석)은 엄마의 칠순 잔치에서 우연히 연회장 직원으로 취업한 의주(임윤아)를 만난다. 용남과 의주는 대학 시절 산악 동아리 선후배 관계. 한때 의주를 마음에 품었던 용남은 그녀와의 만남이 어색하기만 하다. 서먹했던 재회도 잠시, 도심 전체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유독 가스로 뒤덮여 예측 불허의 재난 상황에 빠진다. 용남과 의주는 산악 동아리 시절 습득했던 여러 기술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문제 상황을 해결해 나간다.

도시의 재난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많다. 존 길러민(John Guillermin), 어윈 앨런(Irwin Allen) 감독의 ‘타워링’(Towering Inferno, 1974)이 대표적인 예이다. 한국 영화로는 2009년에 개봉한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 2016년에 개봉한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재난’이라는 단일한 키워드로 수렴될 수는 없지만 2010년에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괴물’ 역시 사회 문제와 괴수 장르가 뒤섞인 도시 재난 영화라 할 수 있다. 도시의 재난은 화재가 발생하거나 건물이 붕괴하는 등 그 원인이 주로 사회적인 문제와 인간의 잘못된 신념이 뒤엉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엑시트’ 역시 재난의 원인이 사회적인 문제로 인한 개인의 일탈 행위임을 보여주지만 거기에 포커스를 맞추진 않는다.

이에 대해 이 감독은 “재난 상황에 주를 두기보다는 캐릭터들이 생존하는 방식에 포커스를 맞춰 (기존 영화와) 차별점을 두고 싶었다”고 말했다.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재난’에 집중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는 ‘개인의 액션’에 주안점을 둔다. 즉 감독은 재난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사람을 구조하는 게 우선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행동 요령을 영화의 서사로 드러낸다. 장르의 변주를 통해 영화적 윤리까지 획득하는 감독의 영민한 연출이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엑시트’는 재난 영화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액션과 코미디가 적절히 배합돼 다양한 장르적 재미를 맛볼 수 있는 영화다. 특히 영화가 코미디를 활용하는 방식이 독특한데, 그것은 주로 용남과 의주의 액션과 리액션에서 드러난다. 두 주인공은 순결무구한 의인(義人)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범인(凡人)으로 표상된다. 너를 살리고 싶지만, 그만큼 나도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사람들이다. 절대적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 인간을 구원하는 영화. 그 상황을 코미디로 무겁지 않게 구현해내는 연출은 기존 재난 영화의 장르적 특성을 비틀며 새로운 영화적 재미를 만들어 낸다.

관객을 ‘체험’하게 하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영화의 초반, 용남이 연회장 ‘구름정원’ 옥상 문을 여는 장면과 영화의 후반, 용남과 의주가 타워크레인에 올라서는 장면에서 특히 도드라진다. 이때 카메라는 하이앵글(High angle, 내려찍기)과 로우앵글(Low Angle, 올려찍기)을 적절하게 활용하며 용남과 의주를 긴박하게 포착한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에 다름 아니다. 결국 관객을 스크린 안으로 끌어들이는 건 주인공의 액션. 이 두 장면에서 관객은 영화의 단순한 관람자에서 두 주인공의 성공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스크린 속 응원자가 된다.

영화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의주의 액션이다. 의주는 구름정원 부점장으로서의 직업적 소명의식이 있다. 그녀는 그저 자신의 직책에 부여된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뿐이다. 의주의 그러한 상식적 행동이 사람과 세상을 구원한다. 기존 재난 영화에서 여성이 피해자 혹은 남성으로부터 구원받는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졌다면, ‘엑시트’는 여성을 능동적인 구원자의 모습으로 형상화한다. 의주는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자발적으로 해내며 용남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 이러한 의주와 용남의 관계 설정은 여성과 남성의 연대가 수직적 구조가 아니라 수평적 구조임을 은유한다. 다시 말해 ‘엑시트’는 용남으로 대변되는 유능한 남성이 재난 상황을 멋지게 해결하는 영웅적 남성 서사로의 전락을 슬기롭게 피해 간다.

‘엑시트’를 보고 극장 밖을 나오면 우리는 자연스레 ‘세월호 참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서 빨리 밖으로 대피하세요”라는 영화 속 의주의 절박한 외침은 2014년 4월 16일,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말한 뒤 자신의 안위를 찾기에 급급했던 세월호 선장의 무책임한 행동을 떠올리게 한다. 『지도자의 자격』에서 남경태 작가는 “이승만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수도 서울을 사수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개전 사흘 만에 한강 인도교를 끊어버리면서 수원으로 도망쳤다”며 “이런 후안무치한 책임 방기가 오늘날 정치권의 무능과 부패로 이어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영화 속 연회장 부점장도, 선박의 선장도, 대통령도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람에겐 최소한의 양심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 없다면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진다. 우리는 지나온 시간을 통해 그러한 혼란을 확실히 실감했다. ‘엑시트’의 흥행 요인 중 하나는 바로 의주와 용남 같은 ‘양심이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주인공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한 사람이 사람을 움직인다. 영화 ‘엑시트’가 관객의 마음을 가져가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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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2019-08-13 23:35:21
무겁지 않고 재밌게 영화 즐겼습니다
기사도 많이 공감 가네요

편집위원 2019-08-13 17:45:22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김센 2019-08-13 17:27:13
짝짝짝.. 좋은 기사입니다

정오균 2019-08-13 13:15:06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