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보수, 누구를 탓하기 전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
한국 보수, 누구를 탓하기 전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08.11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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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 7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 대표 및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앞서 회의실 배경판 제막식 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역사란 무엇인가. 사전은 역사를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으로 정의하고 있다. 물론 역사가 단순히 인류 사회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그대로 모아놓은 집합체는 아닐 것이다. 거기에는 역사로 기록되지 못한 수많은 영혼이 깃들어 있을 테고, 설령 역사 속에 있다 해도 그것이 사실 그대로 고스란한 것인지는 확인할 바가 없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가 역사를 ‘사실(Fact)’이 아닌 ‘이야기(Story)’에 방점을 찍은 이유도 이와 맥이 닿아있다.

그렇다면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저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시간 순서에 따라 복기하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것처럼 옛것을 익히고 새로운 지식을 깨우치는 과정일까. 우리는 역사를 배움으로써 시대와 인간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태도를 함양하고, 나아가 개인의 가치관과 사상을 정돈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는다. 이렇게 역사의 기초적인 정의에 관해 구구절절 써 내려간 이유는, 최근 역사를 배우지 못하거나 혹은 배운 역사를 잊은 것 같은 일부 보수 인사들의 무도한 말들이 언론 지면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일 보수단체인 엄마부대 대표 주옥순씨는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문재인에게 강력하게 경고하기 위해 이곳 일본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다”며 “아베 수상님. 저희 지도자가 무지해서 한·일 관계의 그 모든 것을 파기한 것에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다른 회원 역시 “문재인이 머리를 숙이고 일본에 사죄하지 않으면 절대로 해결이 안 된다”며 극언을 쏟아냈다. 현재 주씨를 포함한 일부 회원들은 전국을 순회하며 ‘문 대통령 하야 1,000만 명 서명 국민대회’를 펼치고 있다. 주씨는 지난 2016년 1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내 딸이 위안부 할머니와 같은 피해를 봤더라도 일본을 용서할 것”이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사람마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양하고, 가치관과 성향에 따라 시대의 흐름을 읽는 방식이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그러한 차이를 인정한다 해도 주씨의 망언에 가까운 몰역사적 언사는 일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소녀상 옆에서 “위안부 문제를 언제까지 우려먹을 것이냐”는 엄마부대 회원들의 주장은 역사 인지능력이 아닌, 인지능력 그 자체를 의심해야 하는 발언이다. 우리나라 대표 보수정당인 자유한국당은 주씨를 국민들과의 소통과 교감을 담당하는 디지털정당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한 바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5일 MBC의 한 시사프로그램에 등장한 일부 목사들의 ‘친일 발언’은 보는 이들을 경악케 했다. 손정훈 목사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대한민국은 2차 대전의 승전국이 아니다. 오히려 일본의 식민지로서 일본과 함께 (전쟁에 참여했으니) 전쟁의 전범이다”라며 “(한일 협정을 통해) 일본이 한국을 독립국으로 인정해준 것”이라며 일본 내 극우 단체들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이 와중에 지난 6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한 우리 정부의 무능한 대처를 지적하는 와중에 ‘우리 일본’이라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의미 없이, 연결어처럼 덧붙인 ‘말버릇’”이라고 해명했지만, 여론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지난 7일에는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이 임직원 700여 명이 모인 월례조회에서 문 대통령을 비난하고 아베 총리를 칭송하는 한 보수 유튜버의 영상을 틀어 논란이 됐다. 한국콜마는 공식 입장문을 통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고 현 상황을 바라보자는 취지였다”고 사과했지만 주가 하락은 물론, 한국콜마 제품을 불매하자는 움직임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확산하고 있다.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인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될 수 없다”고 했다. 『상실의 시대』로 유명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 정부를 향해 “사과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상대방 국가가 ‘후련하게 정리된 건 아니지만 그 정도 사과해줬으니 알았다. 이제 그만해도 되겠다’고 할 때까지 사과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사과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하는 것이라는, 지극히 일반적인 상식도 통용되지 않는 민족에겐 다시 올바른 길을 찾아 살아갈 수 있는 능력도, 희망도 없다.

『역사학의 거장들 역사를 말하다』에서 에드워드 기번은 “모든 역사적 과정은 파괴와 변형과 재건을 의미한다. 모든 쇠퇴 속에 진보의 기회가 놓여 있다”고 말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 완벽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건 오랜 세월을 거쳐 지금 우리 눈앞에 놓여있는 현재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끊임없이 돌아간다”는 말처럼 역사는 영원히 결론이 나지 않는, 언제나 파괴되고, 변형되고, 재건되는 하나의 ‘과정’으로서 우리 앞에 남는다. 역사는 그 과정 속에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하지만 일부 몰지각한 보수 인사들의 망언은 대한민국을 진보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퇴보시키는 촉매제로 기능하고 있다. 보수(保守)는 문자 그대로 ‘보전하여 지킨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보전(保全)은 기존의 것을 온전하게 보호해 유지한다는 뜻도 있지만 보전(補塡), 즉 부족한 부분을 보태어 채운다는 의미도 있다. 우리나라의 보수는 전자를 보전하는가, 후자를 보전하는가. 러셀 커크의 『보수의 정신』에 따르면 보수는 ‘자유’를 핵심 가치로 내세운다. 자유라는 가치는 무조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다. 진정한 자유는 다른 사람의 인격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그다음에 개인의 개성을 자발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나라 보수가 사회 구성원들의 양심, 여론, 관습에 비춰 봤을 때 그러한 행동 규범을 지키고 있는가. 우리의 보수, 우리의 역사는 지금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누구보다 역사의 가치를 숭고하게 지켜야 할 보수가 자신의 역사에 침을 뱉고 있다. 역사학자 E. H. 카(Edward Carr)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이제 정말, 진정한 대화를 시작할 때인데 우리나라 보수가 과연 그런 준비가 돼있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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