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사실은! 배꼽 빠지도록 깔깔거릴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만, 그래요. 살다 보면 매일매일 웃는 날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슬픈 날도 있고, 우울한 날도 있고, 화를 내야만 하는 날도 있어요. 짜증이 치솟는 날도, 신경질이 자꾸 나는 날도, 급기야는 엉엉 울어야 되는 날도 있죠. 그뿐인가요, 너무 힘들고 지쳐서 아물 말도 할 수 없는 고요 속에 우두커니 놓인 날도 있을 테고, 차마 말로 다 못할 만큼 분하고 억울해서 발을 동동 굴러도 해결할 기미가 없는 끔찍한 날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힘겨운 나날 가운데에서도 웃음을 짓던 순간이 있었어요. 싱겁게 툭 건넨 친구의 우스객소리, 등교 버스의 라디오에서 들은 훈훈한 사연, 책에서 우연히 만난 근사한 문장 한 줄, 묵묵히 어깨를 다독여 주는 식구의 따스한 손길,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연인의 포근한 메시지, 이상하게 유난히 예뻐 보이는 거울 앞에 선 나를 만난 날, 같은 순간순간에 말이죠. <22~23쪽>
내가 처음 '프렌즈'를 본 것이 그 무렵이었다. 케이블TV에서 방송되는 이국의 시트콤. 한국 시트콤에서는 좀체 찾아보기 힘든 다채로운 캐릭터와 비꼬듯 폐부를 찌르는 언어유희가 또래보다 조숙한 편이었다. 나의 마음을 강하게 자극했다. (중략) 시트콤 속 세상은 안전하고, 편안하고, 아무리 극심한 갈등 속에서도 언제나 웃음이 있었다. 나는 그게 왠지 좋았다. 그리고 삼십 대가 된 지금 주변에서 나는 누구보다 크게 웃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한번은 어느 건물 지하의 음식점에서 크게 웃었는데, 지하철 역 근처에 있던 친구가 나에게 문자를 보내오기도 했다. '너 OO식당에 있지? 여기까지 니 웃음소리 다 들려.' 어쩌면 나는 시트콤 속에서 세상을 버티는 방식을 배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42~43쪽>
『웃음을 선물할게』
김이설 외 9명 지음 | 창비펴냄│192쪽│1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