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정치 코미디를 보라, ‘정치인은 있어도 정치는 없다’
한국의 정치 코미디를 보라, ‘정치인은 있어도 정치는 없다’
  • 송석주 기자
  • 승인 2019.08.06 16: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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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들이 청와대에서 회동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독서신문 송석주 기자] 주중적국(舟中敵國)이라는 말이 있다. 한 배 안에 적의 편이 있다는 뜻으로, 군주가 덕을 닦지 아니하면 자기편일지라도 모두 곧 적이 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요즘 한국의 정치 상황을 지켜보고 있으면 적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안보를 위협하고, 일본이 경제 질서를 유린하는 현 상황에서 적이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고? 대관절 이게 무슨 소린가.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던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일식집에서 사케를 먹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야당들은 일제히 공식 논평을 내고 집권 여당 대표의 신중치 못한 처사를 비판했다. 야당의 공세가 거세지자 여당은 “이 대표가 반주로 마신 것은 사케가 아니라 국산 청주인 ‘백화수복’이었다”며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식자재로 장사하는 일식당도 가지 말라는 것인가”라며 야당의 비판이 너무 지나치다고 반박했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고 몇 시간 뒤 한국에선 때아닌 ‘사케 논란’이 일었던 것. 해당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여야 모두를 질타하는 댓글을 쏟아냈다. “일식집에 갈 수도 있고, 사케를 마실 수도 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일본산 불매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집권당의 대표가 일식집을 갔어야 했나?”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해 적절한 대응책 마련에 힘을 쏟기는커녕 상대방의 잘못된 점만 꼬집는 야당도 한심하다” 등 정치권 모두를 비판하는 여론이 많았다.

여기에 더해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일본의 경제 보복을 타개할 대응책으로 ‘평화경제’ 카드를 꺼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무역보복이 우리 경제의 도약을 막을 수 없으며, 오히려 경제 강국으로 가기 위한 자극제가 될 것”이라며 “남북 간의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평화경제’ 발언이 있은 지 하루 뒤인 6일, 북한은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2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명의의 담화를 통해 ”남조선이 그렇게도 ‘안보위협’에 시달리고 있다면 차라리 맞을 짓을 하지 않는 것이 더 현명한 처사일 것“이라며 문 대통령의 발언을 조롱하듯 비판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지난달 25일 이후 13일 동안 4번째이다.

이에 대해 바른미래당 하태경 최고위원은 “북한은 미사일에 방사포를 쏘아대는데 대통령은 대북 평화경제 같은 한심한 이야기나 하면서 뜬구름만 잡고 있다”며 “대북 평화경제 같은 주가 떨어뜨리는 발언을 즉각 철회하고 절박한 국민들에게 좀 더 현실적인 대일 경제전쟁 해법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역시 “문 대통령이 남북한 경제협력으로 평화 경제가 실현된다면 일본을 단숨에 따라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는데, 소가 웃을 일”이라고 비판했다.

일본이 경제 보복을 가하고,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끊이질 않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와 정치권이 보여준 모습은 ‘사케 논란’과 ‘평화경제’ 그리고 ‘서로에 대한 비난’이었다. 이 시국에 일부 정당은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지리멸렬한 당내 정치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초당적으로 힘을 모아 작금의 상황을 극복할 방안을 논의해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인데 서로의 잘잘못만 따지고 있는 형국이다.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막스 베버는 “정치가는 자기 행위의 결과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 않고 자기 행위의 탓으로 여겨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한국 정치지도자들은 협력과 상생은커녕 자신의 실수를 감추고 상대방의 잘못을 비난하기에 급급해 보인다. 잘되면 내 탓, 잘못되면 네 탓으로 귀결되는 비효율적 구태 정치가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은 있는데 대통령이 없고, 국회의원은 있는데 국회의원이 없다. 외부로부터 기인하는 안보와 경제 공백을 걱정할 게 아니라 우리 내부의 정치 공백부터 메워야 할 시점이 아닐까. 영화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에 맞서 싸우자고 주장하는 김상헌(이윤석)은 화친을 맺자고 주장하는 최명길(이병헌)에게 “그대와 나, 임금까지 없어져야 백성들이 원하는 새로운 세상이 올 것 같소”라고 말한다. 영화 속 대사가 현실로 이어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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