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이 더 덥다, ‘동네 언니는 왜 에어컨을 빌려 달라 했을까?’
가난한 사람이 더 덥다, ‘동네 언니는 왜 에어컨을 빌려 달라 했을까?’
  • 서믿음 기자
  • 승인 2019.08.05 12: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독서신문 서믿음 기자] “온몸이 끈적거리고, 후덥지근한 공기는 숨이 턱턱 막혔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정말이지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무더운 열기가 살 속을 파고들었다. 머리 위에서는 따가운 햇빛이 사람을 짓눌러대고,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조차도 상실감을 느끼기에 충분할 만큼 태양은 사람을 풀어헤쳐 놓았다.” - 황광수 『폭염』 중 -

37도에 육박하는 무더위가 한반도를 급습했다. 불볕더위에 만물은 타오를 듯 달아오르고, 찜통더위에 사람들의 이마에는 땀이 맺히다 못해 소낙비 내리듯 흘러내린다. 더위는 모두를 지치게 하는 힘든 계절이지만, 그 더위의 고통은 유독 가난한 이들에게 엄혹하다.

여름철 뙤약볕은 만인에게 공평하다. 부자라고 해서 덜 비추고, 가난하다 해서 더 비추지 않는다. 하지만 더위에 따른 고통의 정도에는 극명한 차이가 있다. 돈 많은 사람은 온종일 에어컨 바람 밑에서 기온과 불쾌지수를 낮추며 ‘피서’(避暑)를 즐기고, 더 여유가 있는 사람은 지구 반대편 시원한 나라로 떠나 여름을 보내고 들어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하나로 여름을 나는 경우가 많다. 또 취약계층의 집은 통풍이 어려운 좁은 구조로 열 방출이 어려운 경우가 많고, 혹 지붕에 물이 샜지만 제대로 수리할 형편이 안 돼, 임시방편으로 방수포를 올렸다면 열 방출은 더욱 요원하다. 자연은 만인에게 공평하다지만, 그에 따른 고통지수는 가난의 정도와 비례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최근 한 온라인커뮤니티에서는 평소 알고 지내던 동네 언니가 한밤중에 전화해 다짜고짜 에어컨을 빌려달라고 했다며 분노를 표출하는 어느 임산부의 글이 큰 관심을 받았다. 에어컨이 고장 났지만, 새로 살 형편이 안 된다며 세 살, 다섯 살 아이들이 힘들어해 에어컨을 몇 달간 빌려 달라고 했던 것. 글쓴이 역시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인지라 하나밖에 없는 에어컨을 빌려달라는 말은 지나친 요구로 여겨졌고 온라인상에서는 동네 언니를 향한 비난이 빗발쳤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알고 보니 동네 언니는 남편을 잃고 홀로 식당일을 하면서 살아왔으나, 최근 팔이 부러져 깁스하면서 일도 못 하는 상황에서 열대야에 아이들이 잠도 못 자고 울어대자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어렵게 부탁했던 것이다. 재차 올린 글에서 글쓴이는 “1년 3개월을 알고 지냈는데 이런 상황을 몰랐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며 “반지하 10평 남짓한 (동네 언니 ) 집안에는 곰팡이가 펴져 있고 숨을 못 쉴 정도로 집안의 공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고 적었다.

지난해 기록적인 폭염으로 큰 피해를 겪으면서 정부는 곳곳에 ‘무더위 쉼터’를 배치했다. 하지만 주민센터나 경로당이 대부분을 차지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동작구 사당3동의 경우 주민센터를 제외한 무더위 쉼터 열두 곳 모두가 경로당으로, 한밤중에는 이용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설령 낮이라고 해도 노년이 아닌 경제적 취약계층이 경로당을 자유롭게 이용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자연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지만, 결과적으로 경제적 취약계층에게 더 엄혹한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5일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기준 온열질환자는 857명, 사망자는 네명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23일 경북 청도군, 이달 2일과 3일 경북 고령군과 김천, 4일 경북 포항에서 사망자가 발생했다. 사망자는 70~80대로 밭일을 하다가 사망했다.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 버그는 책 『폭염사회』에서 1995년 미국 시카고에 닥친 기록적인 폭염으로 일주일 사이 700명이 숨진 사건을 거론하며 “수백 명이 집에서 친구나 가족의 보호 혹은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혼자 서서히 죽어갔다는 사실은 사회적 붕괴가 일어났다는 신호다. 여기에는 공동체, 이웃, 사회적 관계, 정부 기관, 경고 신호를 보낼 책임이 있는 언론 등이 모두 관련돼 있다”고 말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