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을 두려워하며
교양을 두려워하며
  • 김혜식 수필가/전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 승인 2019.08.03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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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수필가/전 청주드림 작은도서관장

[독서신문] 정크 푸드엔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지난날이다. 그러나 작년 여름 폭염 때부터인가. 아이들이나 좋아할 법한 정크 푸드에 나도 모르게 입맛이 길들었다. 이는 무더운 여름철 뜨거운 불 앞에서 음식을 요리하는 게 고역스러워 생겨난 일이기도 하다. 

며칠 전 여름 감기로 고생을 했다. 복용하는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듯 감기 바이러스는 쉽사리 물러서지 않았다. 나중엔 고열과 함께 물맛까지 씁쓸하게 만들었다. 이 탓에 통 식욕을 잃고 있을 때다. 스마트 폰에 깔린 배달 음식 앱에 눈길이 머물렀다. 햄버거 생각이 나서 두 개를 앱으로 주문했다. 요즘은 햄버거 두 개도 배달해준다.

이십 여 분 뒤 배달원이 아파트 현관 벨을 눌렀다. 밖은 삼십 도를 웃도는 폭염이련만 배달원은 온 얼굴을 검은 천으로 가린 채 구슬땀을 흘리며 햄버거 두 개를 들고 우리 집을 찾아온 것이다.

배달원을 보자 갑자기 안쓰러운 생각에 냉장고 문을 열어 시원한 생수를 한 병 꺼내어 그에게 건넸다. 젊은 배달원은 몹시 갈증이 난 듯 물 한 병을 단숨에 들이킨다. 그리곤 연신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날만 새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음식을 배달하지만 시원한 생수를 얻어먹기는 우리 집이 처음이란다.

햄버거 두 개를 배달시키면서 겨우 생수 한 병 준 것뿐이다. 그런데 이토록 고마워하니 왠지 자신이 부끄럽고 한편 민망스러웠다. 그가 돌아간 후 상념에 잠겨보았다. 내가 편하기까진 누군가가 나를 위해 이런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는 생각에 종전의 땀으로 범벅된 청년 얼굴이 떠올려졌다. 청년의 모습이 떠오르자 햄버거 두 개를 앞에 놓고 한동안 그것을 선뜻 베어 물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음을 새삼 깨우친다. 이기심이 팽배하고 각박하다 해도 서로 어울려 사는 게 세상인심이다. 이때 사소한 일에도 고마운 마음을 지닌다면 사회는 훨씬 밝고 따뜻해질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집안에 가만히 앉아있어도 땀으로 옷이 흠뻑 젖도록 무더울 땐 얼음을 띄운 냉면 한 그릇 먹으면 더위가 곧 가시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식당에서 사 먹는 구수한 냉콩국수 맛은 또 어떤가. 이열치열로 뜨끈한 삼계탕 한 그릇 비우고 나면 더위에 지친 몸에 힘이 불끈 솟는 듯하다.

이 모든 게 뜨거운 불 앞에서 끓이고 볶고, 다듬는 요리사의 수고가 없다면 어찌 우리가 이 맛있는 음식들을 맛볼 수 있으랴. 그럼에도 내 돈 내고 그 값에 준하는 음식을 사 먹었다는 생각만 앞설 뿐이다. 그 음식이 입에 들어오기까지 수고한 식당 요리사의 노고는 미처 생각 못 하는 게 사실 아닌가.

여름철 날씨가 무더운 것은 자연의 순리로써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작년처럼 강렬한 태양 빛이 온 누리를 집어삼킨다면 이것은 살인적인 폭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난해 매스컴 보도에 의하면 작년의 폭염은 백 십 사 년 만에 더위에 대한 기상 관측 이래로 신기록을 세웠다고 했다. 최고 기온이 사십 도였던 곳이 여섯 곳이나 기록한 폭염이었다는 말이 실감 난다. 아침 기온이 삼십 도가 넘는 초열대야여서 온열질환으로 사천 명이나 쓰러질 만큼 극한의 폭염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폭염이 조선 시대에도 극성을 부렸었나 보다. 조선 시대 후기 학자 장유는 자신의 글에서, 극심한 가뭄의 책임이 교만한 태양 탓이라고 폭염을 교양(驕陽)이라고 지칭했다. 만물의 빛인 태양도 때론 이렇듯 양면성이 존재하나 보다. 그 빛이 너무 뜨겁고 극렬해서 여름철 태양을 교양(驕陽)이라고까지 불릴 정도였다니…. 이로보아 우주도 장점과 단점의 두 얼굴이 항상 존재하나보다.

이렇게 폭염이 기승을 부리니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밀집된 도심지의 쪽방촌, 냉방 시설을 제대로 못 갖춘 하층민들의 삶이 내심 걱정스럽다. 세종은 자신이 집권할 때 유독 가뭄과 폭염이 심해지자 감옥에 갇힌 죄수까지도 걱정했다고 한다. 감옥에 갇힌 죄수를 위해 시원한 물을 준비해 죄수들이 손을 자주 씻게 해서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했음은 물론, 경범죄인 죄수들은 여름철엔 잠시 석방도 했단다. 과연 성군다운 백성에 대한 깊은 관심이고 사랑이었다.

관심은 배려이고 타인에 대한 이타심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남녀 사랑에서조차 죽은 여인보다 잊힌 여인이 더 불쌍하다는 표현으로써 무관심을 ‘잊힌 여인’에 빗대었을까? 어찌 보면 교양(驕陽)보다 더 두려운 게 이웃에 대한 우리들의 무관심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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